‘밀레니얼 세대’ 올한해 출판계에 화두로 떠올라
기성세대 위한 분석보단 2030의 발언이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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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세대가 출판계를 강타했다. 2000년, 즉 새로운 천년의 시작인 2000년 전후의 변화를 온몸으로 겪은 밀레니얼 세대 분석이 올해 출판물의 확실한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이다. 지난해 11월 출간된 <90년생이 온다>가 발행부수 35만부를 찍고 40만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으며, 올 한해 밀레니얼 세대를 다룬 책들이 20종 이상 쏟아져나왔다. 2017~2018년만 해도 한해 네댓종 정도 발간된 것에 견줘보면 밀레니얼 세대에 쏟아진 폭발적인 관심의 온도를 짐작할 수 있다. 대형 온라인서점인 예스24가 집계한 밀레니얼 관련 서적 판매량을 보면 2017년엔 90권, 2018년엔 3820권이 팔리다가 올해엔(11월12일 기준) 7만7550권이 팔렸다. 예스24에서 경제·자기계발서 기획을 맡고 있는 박정윤 엠디(MD)는 “밀레니얼 세대들이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기성세대와 큰 차이가 있음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90년생이 온다>를 시발점으로 이 흐름이 출판계의 표면에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밀레니얼 세대 관련 서적은 대략 네 가지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직장 생활을 소재로 삼은 리더십 경영서, 새로운 소비 주체의 등장에 따른 마케팅 트렌드 변화, 밀레니얼 세대의 행동양식을 다룬 에세이, 밀레니얼 세대 출현의 역사적 맥락을 다룬 사회과학서 등이다. 교보문고의 밀레니얼 주제 도서 판매량을 보면 <90년대생이 온다>를 필두로 <트렌드 MZ 2019> <밀레니얼 이코노미> <밀레니얼과 함께 일하는 법> <우리, 함께 살 수 있을까?> <밀레니얼 선언> <밀레니얼의 반격> <밀레니얼-Z세대 트렌드 2020> 차례였다.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의 김현정씨는 “밀레니얼 세대를 다룬 서적들은 경제전망 분야에서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가다가 연말 인기 분야로 자리매김했다”고 말했다.
국내외 전문가마다 밀레니얼 세대를 정의하는 기준이 다르지만, 한국에선 대체로 1980년대 중반에서 2000년께 출생한 젊은이들을 밀레니얼 세대로 일컫는다. 물론, 이들의 대척점엔 ‘꼰대’라 불리는 부모세대, 즉 86세대가 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2000년대 초반부터 개인이 집단의 우위에 서는 정이현·김애란 등의 소설을 통해 밀레니얼 세대가 지닌 생활감각의 실마리가 드러났다”며 “앞으로 20년간은 이들이 한국사회의 지배적인 힘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에 출판계도 뜨겁게 반응하고 있다”고 짚었다. 장 대표는 “특히 올해는 ‘조국사태’를 거치며 세대분열이 극심해졌고 밀레니얼 세대의 가치와 라이프스타일이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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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가 가장 큰 관심을 갖는 주제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이다. “역사상 가장 특별한 신세대”라 불리는 이들이 자신들과 어떻게 다른지, 또 어떻게 함께 공존할 수 있는지 방법을 모색하는 책들이 잘 팔리는 이유다. <밀레니얼과 함께 일하는 법>을 쓴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몇 년 전부터 젊은이들이 놀고 공부하고 소비하고 생각하는 방식이 매우 다르며, 이들이 조직에 들어갔을 때 윗세대에 대한 불만이 엄청 높다는 점을 포착했다”며 “이에 흥미를 느껴 조직 내 갈등의 양상을 분석하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게 됐다”고 말했다.
저자들이 분석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은 이렇다. 태어나면서부터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익숙한 이들은 ‘디지털 네이티브’로서 윗세대인 ‘디지털 이민자’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월등한 웹 정보 습득력과 콘텐츠 제작 능력을 지니고 있다. “자신보다 디지털 기술 역량이 떨어지고 세상 돌아가는 데 업데이트도 안 되어 있는 어른들로부터 어린아이 취급을 받으면서 절망하는 이유”다.(<밀레니얼과 함께 일하는 법>)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이들은 “왜 성과보다 근태가 중요하냐” “9시 출근이면 왜 10분 전까지 와야 하느냐”고 묻는다.(<밀레니얼은 처음이라서>)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부모세대보다 가난할 가능성이 더 큰 이들은 “난간 없는 유리계단” 위에 서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명문대 졸업생이 9급 공무원을 준비하는 게 하등 이상할 것 없다고 생각한다.(<90년대생이 온다>) 기업에서 정년퇴임이나 승진의 엘리베이터를 기대하지 않기에 “퇴사하면 밖은 지옥”이라고 말하는 선배들과 달리 하루에도 몇번씩 퇴사를 꿈꾼다.(<…세대공존의 기술>) 이들은 어려서부터 ‘헬리콥터 맘’의 채근 속에 ‘숙제기계’로 자라났고, 일찌감치 포르노에 노출돼 있었지만 성관계 빈도는 부모세대보다 낮은 존재들이다.(<밀레니얼 선언>)
한쪽에선, 은퇴가 시작된 부모세대의 퇴조 속에서 이들은 시장을 이끌 소비의 주체로 호명된다.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는 곤도 마리에의 교시를 추종하는 이들은 원하는 만큼만 구입하는 미니멀리즘을 따르며, 소유보다 공유에 호응한다.(<밀레니얼-Z세대 트렌드 2020>) ‘호갱’ ‘호구’는 단호히 거부하는 똑똑한 소비자인 동시에 기업의 갑질엔 불매운동으로 응징하는, 행동하는 소비자다.(<90년대생이 온다>)
밀레니얼 세대를 ‘도전정신 없이 사적인 생활에만 관심 있는 무력한 신입사원’이나 ‘뜨는 소비계층’으로 인식하는 데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장 전정환은 <밀레니얼의 반격>을 통해 기성 시스템에 도전하는 ‘라이프스타일 혁신가’들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세대차이는 현상일 뿐 본질은 ‘시대변화’”라며 “변화의 과도기에선 가진 것이 적어 잃을 것도 적은 2030세대 일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한다”고 강조한다. 밀레니얼 젊은이들은 “강북의 골목길에서 일상의 위대함을 찾아내고” “과거의 것을 되살려 힙한 미래 가치로 만들어내고” “지방 도시 곳곳에서 고유 가치를 발굴해” 독서클럽 스타트업, 참기름 소믈리에, 로컬푸드 사업, 리모트워크 기업가 등으로 살아간다.
밀레니얼 출판물이 우후죽순 쏟아지지만 정작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충분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업무 효율성을 위해 마찰을 피해야 하는 후배 사원에 머물거나 마케팅의 표적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밀레니얼 세대가 직접 자신들의 사회적 위상을 성찰하면서 구체적인 삶의 고민을 털어놓고 변화를 요구할 수 있는 자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88년생 저널리스트가 미국 사회의 분열적 현실을 분석한 <밀레니얼 선언>을 펴낸 박재호 생각정원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밀레니얼 서적을 구입하는 이들은 기성세대가 많은데 이는 젊은이들의 심리구조를 파악하면서 새로운 상품을 기획하려는 목적이 크기 때문”이라며 “당사자들이 세상을 향한 불만을 표현하는 이야기들을 통해 깊이 있는 밀레니얼 담론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90년생이 온다>를 낸 웨일북의 권미경 대표도 “밀레니얼 출판시장이 당분간 유지되겠지만 지금처럼 ‘그들이 누구냐’에 집중하는 책들은 생존 기간이 짧을 것 같다”며 “90년대생이 직접 털어놓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다음 순서”라고 내다봤다.
밀레니얼 세대 관련 도서 목록
<밀레니얼 세대가 일터에서 원하는 것>(제니퍼 딜·알렉 레빈슨, 박영스토리) <90년생이 온다>(임홍택, 웨일북) <트렌드 MZ 2019>(대학내일20대연구소, 한빛비즈) <최강소비권력 Z세대가 온다>(앤디 몰린스키·안지 리드, 홍익출판사) <밀레니얼과 함께 일하는 법>(이은형, 앳워크) <퇴사 후 비로소 나다운 인생이 시작되었다>(김가빈, 스노우폭스북스) <회사남/여>(조세핀 최·신이지, 두앤북)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서메리, 미래의창> <요즘 애들은 츤데레를 원한다>(정지현, 두앤북) <요즘 애들, 요즘 어른들>(김용섭, 21세기북스) <90년생과 어떻게 일할 것인가>(최경춘, 위즈덤하우스) <참을까? 때려치울까?>(권순영, 경원북스) <실리콘밸리의 팀장들>(킴 스콧, 청림출판) <진작 이렇게 생각할 걸 그랬어>(양지아링, 포레스트북스) <밀레니얼 선언>(맬컴 해리스, 생각정원) <파이어족이 온다>(스콧 리킨스, 지식노마드) <밀레니얼 이코노미>(홍춘욱·박종훈, 인플루엔셜) <요즘 것들과 옛날 것들의 세대 공존의 기술>(허두영, 넥서스BIZ) <밀레니얼의 반격>(전정환, 더퀘스트) <밀레니얼-Z세대 트렌드 2020>(대학내일20대연구소, 위즈덤하우스) <90년생 오너십>(윤병호, 북씽크) <밀레니얼은 처음이라서>(박소영·이찬, kmac) <90년대생 소비 트렌드 2020>(곽나래, 더퀘스트)
※ 2017~2019년 출간 도서, 출간일 차례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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