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발간된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0’에서 별을 받은 셰프들이 서울 광진구 광장동 비스타 워커힐 호텔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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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매년 이맘때가 되면 서울 고급 레스토랑 관계자들은 초긴장 상태가 된다. ‘심판의 날’이 다가와서다. ‘미식의 성서’라고 불리는 미쉐린 가이드의 발표는 고급 레스토랑의 미래를 좌우한다. 미쉐린 가이드의 별에 따라 셰프의 명예가 엇갈리고, 레스토랑 경영에도 영향을 미친다. 업계 이해가 달렸으니 공정성 논란이 일게 마련. 올해는 ‘은밀한 거래’에 대한 폭로까지 나오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0’이 14일 발표됐다. 미식가와 호사가의 흥미를 끌 내용이지만 미쉐린 가이드의 정당성과 신뢰도 논란은 더 거세지고 있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20 스타 레스토랑. 그래픽=강준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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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별 단 9곳… 스타 레스토랑 역대 최다
이날 미쉐린 코리아의 발표에 따르면 국내 레스토랑 9곳이 새롭게 별을 받았다. 올해 별을 받은 레스토랑은 총 31곳으로 지난해 26곳보다 5곳이 늘었다. 역대 가장 많은 별이 뿌려졌다.
한식당 서울신라호텔의 라연과 광주요그룹이 운영하는 가온이 4년 연속 최고 등급인 3스타(요리가 매우 훌륭해 맛을 보기 위해 여행갈 가치가 있는 식당)를 유지했다. 새로 추가된 곳은 없었다.
2스타(요리가 훌륭해 멀리 찾아갈 만한 식당)를 받은 레스토랑 중에서 깜짝 스타가 탄생했다. 뉴욕 3스타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은 서현민 셰프가 한국으로 돌아와 만든 임프레션은 문을 연 지 1년 만에 별 2개를 한번에 받았다. 지난해 1스타(요리가 훌륭한 집)를 받았던 모수는 올해 별 한 개를 추가해 2스타 반열에 올랐다. 권숙수와 정식당, 코지마, 밍글스, 알라 프리마가 2년 연속 2스타를 받았다. 1스타 레스토랑에는 떼레노, 묘미, 보트르 메종, 에빗, 오프레, 온지음, 피에르 가니에르 등 7곳이 새로 진입하면서 22곳이 선정됐다.
요리 종류도 다양해졌다. 한식을 하거나 한식을 바탕으로 현대식 요리를 선보이는 곳이 12곳으로 절반을 넘기지 않았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이 발표된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만 해도 별을 받은 레스토랑 26곳 중 절반(13곳)이 한식당이었다. 그웬달 풀레넥 미쉐린 가이드 인터내셔널 디렉터는 “서울의 미식 문화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요리와 미식이 풍부한 한국 요리는 조상들의 전통과 현대의 혁신 사이에서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비판을 의식해 다양성에 좀 더 중점을 둬 선정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따른다.
4회 연속 3스타를 받은 가온의 김병진(맨 오른쪽) 셰프와 라연의 김성일(맨 왼쪽) 셰프가 14일 서울 광진구 광장동 비스타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그웬달 뿔레넥(가운데) 미쉐린 가이드 인터내셔널 디렉터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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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공정성과 신뢰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명품관에 입점한 한식당 윤가명가 측은 이날 발표에 앞서 “2013년쯤 미쉐린 가이드의 중간 관계자로부터 미쉐린 평가원의 비행기값과 체류비, 숙박비 등을 제공하고, 컨설팅을 받는 조건으로 별을 준다는 제안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이를 거절한 윤가명가는 이후 ‘별 명단’에서 제외됐다는 것이다. 지난해에도 스타 셰프 어윤권씨가 미쉐린 가이드 측에 공개 요리시연을 요구하며 공정성에 이의를 제기했다. 미쉐린 가이드 측은 “별을 주는 대가로 비용을 청구하는 일은 말도 안 된다”며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평가원들은 철저하게 익명으로 활동하며, 개인이 아니라 여러 명의 평가원의 만장일치를 통해 별의 수여가 결정된다”고 일축했다.
미쉐린 가이드는 프랑스 타이어회사인 미쉐린 그룹이 1900년부터 자동차 여행객에 정보를 주기 위해 발간하기 시작했다. △요리의 개성과 창의성 △요리법과 풍미의 완벽성 △재료수준 △가격에 합당한 가치 △메뉴와 맛의 일관성 등 5가지 평가기준으로 업체를 선정한다. 미쉐린은 선발한 평가원들의 국적이나 경력 등을 일체 비밀에 부친다. 이들은 1년에 약 250회 식사를 하고, 호텔에서 160일 숙박을 하며 600여명을 만나고 보고서 1,000개 이상을 작성해 각국의 최고의 식당을 가린다.
프랑스 타이어회사인 미쉐린그룹이 1900년부터 자동차 여행자들을 위해 도움이 되는 정보를 담아 배포하기 시작한 ‘미쉐린 가이드’는 현재 전세계 31개국에서 매해 발간된다. 미쉐린 코리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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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 데는 ‘미쉐린 효과’가 크다. 별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순간 해당 레스토랑의 예약이 폭주하고, 매출이 급등한다. 이날 깜짝 스타로 등극한 임프레션의 예약 사이트도 반나절 만에 마비됐다. 이날 별을 받은 한 스타 셰프는 “아무래도 별을 받으면 예약이 늘어나고, 매출이 2배 이상 상승해 안정적으로 식재료를 쓸 수 있고, 경영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1스타 레스토랑의 저녁 코스 대부분이 20만원을 호가한다. 높은 가격에도 별만 달면 예약 대기가 2개월을 넘어간다. 한 요식업계 관계자는 “한끼에 20만원이 넘는 식사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한정돼 있다”며 “해외 미식가나 관광객 등을 끌어오려면 아무래도 별을 받는 게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쉐린 가이드의 신뢰도가 예전만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많다. 서울 시내 수만 개의 레스토랑 중에 별을 받는 레스토랑이 31곳에 불과한데,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에 버금가는 레스토랑도 많다는 얘기다. 한정된 평가원들이 시공간 제약 속에서 수많은 레스토랑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용재 음식평론가는 “2000년대 초반부터 방문 횟수나 공정한 평가 등에 대한 의구심은 늘 제기돼 왔다”면서 “파워블로거 등 전문가들의 리뷰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시대에 미쉐린 가이드 자체에 대한 신뢰도 많이 낮아졌다”고 평가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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