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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화)

“쓰레기는 인간 욕망의 부산물, 욕망버려야 쓰레기 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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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석, 담배공장 폐창고 쓰레기 활용한 설치미술로

청주공예비엔날레서 “관객이 오래 머무는 작품”선풍
한국일보

강홍석 작가가 ‘2019청주공예비엔날레’ 전시장의 한 곳인 옛 청주연초제조창 동부창고에 펼쳐놓은 자신의 ‘Strange But All Ours(우리 모두의 것-낯선)’ 앞에서 제작 과정을 들려주고 있다. 그는 “작품 제목처럼 쓰레기는 우리 모두가 만든 것이며, 우리 모두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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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쓰레기를 활용한 대형 설치미술이 ‘2019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구름 관객을 모으고 있는 화제작은 강홍석 작가의 ‘Strange But All Ours(우리 모두의 것-낯선)’이다. 제목에서 연상되듯, 이 작품은 좀 이상하고 별나다. 폐 창고에 가득 쌓인 쓰레기를 소재로 썼고, 설치 작업을 거친 작품을 그 창고 안에 그대로 구현해 놓았다.

옛 청주연초제조창 동부창고 한 켠에 자리한 작품은 첫 인상부터 평범하지 않다. 낡은 샹들리에의 낮은 조명으로 실내는 어두컴컴하고 다소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세 부분으로 나눈 전시공간은 각각 ‘먼지궁전’ ‘쓰레기궁전’ ‘포토존’이란 명패를 달았다. 먼지궁전 한 가운데, 리어카 위에 앉은 부처상이 특히 눈길을 끈다. 벽면에는 먼지로 그린 회화 작품 5점이 걸려 있고, 관객이 드나드는 곳에 설치한 TV에선 작품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물이 방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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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창고에 있던 쓰레기를 활용해 현장 설치한 강홍석 작가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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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작품 앞에서 만난 강홍석 작가는 ‘버려진 보잘것없는 사물로 작업하는 작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주로 쓰레기를 이용해 입체작품, 설치작업을 선보이는 작가다. 지난 30여년간 미국 독일 한국 등 국내외에서 개인전을 22회나 열고, 아트페어 등에 150점 이상을 출품한 설치미술계의 베테랑이다. 이런 그에게도 이번 청주공예비엔날레 작품은 큰 도전이었다.

“비엔날레조직위의 의뢰를 받고 동부창고를 처음 열어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어마어마한 쓰레기 더미에 공포심까지 느껴지더군요. 높이만 4m에 달하는 쓰레기 더미를 등산하듯 기어 올라야 했습니다”

엄청난 쓰레기 양에 놀란 그는 한편으론 예술가로서 오기가 발동했다고 한다. “작업이 어렵다고 못하면 예술하지 말아야지”란 각오로 비엔날레측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이렇게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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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작가 작품 중 ‘먼지궁전’부분. 리어카 위에 버려진 부처상과 예수상, 성모마리아상이 올려져 있다. 뭐든 쓰고 버리는 인간은 욕망이 충족되면 성물(聖物)까지도 마구 버린다는 사실을 상징화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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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작품을 구상하기 위해서는 먼저 쓰레기 종류와 정확한 분량을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 굴삭기를 동원해 쓰레기를 분류하고, 하나 하나 정리에 들어갔다. 지은 지 60년 이 넘은 창고에서는 먼지가 안개처럼 쏟아져 내렸다. 먼지는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재료로 쓰인다. 이번에도 그는 먼지를 남김없이 채취한 뒤 체로 치고 안료로 고착시켜 먼지궁전을 꾸미고 회화 작품을 제작해냈다. 전시 공간을 무너지지 않게 고정시키는 철제구조물은 쓰레기 더미에서 나온 녹슨 철제품을 용접해 만들었다.

작업에는 꼬박 두 달 반이 걸렸다. 서울에서 활동중인 그는 아예 청주에 월셋방을 얻어 놓고 아침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하루 12시간 이상 작업에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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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에서 채취한 먼지를 안료에 섞어 만든 회화 작품. 그림에 들어있는 물건은 먼지 작업을 할 때 착용하는 마스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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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쓰레기는 인간 욕망의 부산물이며, 인간이 만들어낸 쓰레기가 결국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를 위협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는 쓰레기가 만연한 현실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더럽다고 외면할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놓은 삶의 풍경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나친 자본주의로 인간의 욕망이 끝없이 부풀어올랐고, 멈출 수 없는 욕망은 쓰레기를 양산해내고 있다. 결국 쓰레기를 줄이려면 욕망을 버려야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냥 쓰레기 더미만 있다고 하면 누가 와서 보겠어요. 예술 작품으로 변신하니까 와서 보고 느끼고 쓰레기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작품은 새로운 가치와 실험 정신을 보여주는 대작으로 소문나면서 관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비엔날레조직위 관계자는 “강 작가의 작품은 ‘관객이 가장 오래 머무는’ 작품”이라고 귀띔했다.

비엔날레 측은 전시가 끝난 뒤에도 이 작품을 곧 바로 해체하지 않고 당분간 보존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강 작가는 “앞으로 쓰레기 문제에 공감하는 시민사회, 공동체 사람들과 연계해 좀더 적극적으로 버려진 사물을 활용한 작품 활동을 벌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지난달 8일 개막한 청주공예비엔날레는 13일 현재 유료 관객 28만명을 기록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글 사진 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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