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 작가 “훈장 10개 받아도 모자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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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엔 자료를 충분히 구할 수 없어 팩트가 30, 상상력이 70이었습니다. 그게 계속 마음에 빚처럼 얹혀져 있어서 자료를 차근차근 모았습니다. 이것이 제 ‘마지막 책’이라고 생각하고 제 모든 걸 쏟아 부어 썼습니다.”
‘남에서도 북에서도 지워진’ 독립운동가 김원봉의 삶을 조명한 <약산 김원봉>(2005)을 썼던 소설가 이원규(72)가 추가로 발굴된 자료와 논문을 집대성해 새롭게 엮은 평전 <민족혁명가 김원봉>(한길사)을 펴냈다. 6일 서울 중구 복합문화공간 ‘순화동천’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이 작가는 김원봉 평전을 다시 내놓은 감회를 밝혔다. 이 자리엔 “김원봉과 고향이 같은 밀양 사람이라서 김원봉의 얘기를 어릴 적부터 많이 듣고 자랐다”는 김언호 한길사 대표를 비롯해 이번 책 집필을 위해 같이 현장을 답사하고 자료를 제공한 연구자들도 함께했다. 김주용 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교수, 김영범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 이동언 선인역사문화연구소장, 이준설 밀양 의열기념관 학예연구사,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수석연구위원 등이다.
1990년대부터 사회주의 계열 독립투사들의 발자취를 찾아 중국과 러시아 일대를 누볐던 이 작가이지만, 2005년 <약산 김원봉>을 펴낼 때만 해도 구할 수 있는 사료가 적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10여년간 김원봉이 이끌었던 의열단 활동을 집중 연구한 논문도 다수 발표됐고, 북한주재 소련대사 푸자노프의 일지나 북한 로동당출판사가 발간한 <김일성 저작집> 등을 접할 수 있었다. 마침 김원봉의 무장투쟁이 다뤄진 영화 <암살>(2015)로 인해 대중적 관심도 고조됐다.
이날 간담회에선 김원봉의 정치·사상적 정체성과 그를 둘러싼 서훈 논란 등이 쟁점이 됐다.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등 김원봉의 여러가지 정체성 가운데서도 ‘민족혁명가’를 택한 이유에 대해 김영범 교수는 “반제민족혁명이란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온 세계가 평등의 가치를 바탕으로 한 나라, 한 집안을 만들자는 개념인데 그걸 정확히 따라가보면 김원봉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원봉은 일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조선 민족이 3·1운동 때처럼 하나로 뭉치는 것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민족운동 단체들이 출신지와 이념에 따라 분열하는 걸 경계했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이 이끈 조선의용대의 역사적 역할을 강조한 이래 김원봉의 독립유공자 인정과 건국훈장 추서를 둘러싸고 벌어진 정치공방은 간담회에서도 잔상으로 남았다. 북한정권 수립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서훈이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한 의견을 묻자 이 작가는 “사실 김원봉의 활동은 훈장 10개를 받아도 모자를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업적을 한사코 깎아내리는 상황에서 훈장을 받는다면 하늘에서도 기뻐할 수 있겠냐”며 “김원봉은 자신이 세상을 떠난 70년 뒤에서도 이렇게 남북이 갈라져 있을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선택에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나 또한 이 작품이 통일된 이후에 남에서든, 북에서든 잘 썼다는 평가를 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김원봉의 월북 이후 행보에 대해선 자료가 없어 많이 아쉬웠다”며 “언젠가 정확한 자료를 얻으면 그 부분은 고쳐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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