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출판원, 2명 조명 책 출간
김동성, 美유학후 본보 창간 참여… 1921년 만국기자회 ‘코리아’ 대표도
김현준, 국내 최초 신문학 박사학위
“나는 … 만국기자대회에서 조선민족도 타민족에 비하야 별로히 손색이 무(無)하다는 실지의 증명을 표(表)하게 된 것을 감사한다.”
동아일보 창간멤버 가운데 한 명인 김동성 기자(1890∼1969)가 1921년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제2차 만국기자대회에 ‘코리아 대표’로 참석하고 이듬해 2월 연재한 기사의 첫머리다. 나라 없는 민족의 기자 대표로 참석한 셈이다. 김 기자는 “각국 대표석 가운데 ‘코리아’라는 이름의 좌석이 있는 것을 보고 감격했던 심정은 지금도 생생하다”고 나중에 술회했다.
김 기자와 같은 한국 언론학의 선구자를 조명한 ‘한국 언론학 선구자: 김동성과 김현준’(차배근 박정규 김영희 박선희 지음, 서울대출판문화원·사진)이 발간됐다.
김 기자는 1909년 미국에 유학해 신문학과 신문만화, 농학 등을 공부하고 귀국한 뒤 조사담당 기자로 본보 창간에 참여했고, 첫 워싱턴 특파원으로 활동했다. 신문에 만화를 도입했고, 영문 추리소설을 번역 연재해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특히 1924년 그가 펴낸 ‘신문학(新聞學)’은 미국의 실천적 저널리즘의 기초를 한국 사례와 함께 설명한 책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학 관련 전문도서로 평가된다. 광복 뒤에는 합동통신사를 설립하고 초대 사장을 지냈다.
또 다른 언론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김현준(1898∼1949)은 한국인 최초의 신문학 박사다. 독일 라이프치히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1928년 귀국해 보성전문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박사 논문인 ‘동아시아에서 근대 신문의 양태’는 한중일 신문의 모습을 개괄한 것이다. 이 논문에서 그는 동아일보의 예를 들며 “한국인에 의해 발행되고 일본의 영향을 받지 않는 신문은 (1면을) 국내외 정치내용의 주 사설로 시작한다”고 썼다.
잘못 알려진 김현준의 생애도 바로잡았다. 책에 따르면 김현준은 전남 나주 태생이며, 문학박사가 아닌 신문학 전공의 철학박사였고, 1949년 광주 서석동 자택에서 담석증으로 사망했다. 저자들은 “김동성과 김현준이 뿌린 신문학의 씨앗은 광복 이후 한국 언론을 비약적으로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됐다”고 발간 취지를 밝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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