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일송 前 버지니아주 한인회장
美 하원 '위안부 사죄 결의안'과 버지니아주 '동해 병기법' 끌어내
홍일송 전 미국 버지니아주 한인회장은 “역사를 바꿀 수는 없지만, 국민의 염원이 하나가 됐을 때 그것을 바로잡을 힘을 지닐 수 있다”고 했다. /박상훈 기자 |
홍일송(56) 전 미국 버지니아주 한인회장은 주(州) 의회의 '교과서 동해 병기(竝記) 법안' 채택을 위해 뛰어다닐 때, 뜻밖에도 일본의 닛폰TV에서 '당신들을 객관적으로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와 수락했다. "나중에 그 영상을 보고는 간담이 서늘해졌다"고 그는 회고했다. 자기들 국익에 반하는 일인데도 민간 외교의 현장을 중립적으로 소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렇게 냉정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이 흥분하면 일본은 웃습니다." 최근 한국문화재재단 주최 강연 등을 위해 한국을 찾은 홍 전 회장은 기자와 만나 "일본 시골의 작은 마을 지방정치인이 망언 한마디 던지면 대한민국 전체가 화를 내는 패턴이 반복돼선 곤란하다"고 했다.
홍 전 회장은 대표적인 한인 '민간 공공외교관'으로 꼽힌다. 2007년 7월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이 미 연방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2014년 3월에는 버지니아주의 '동해 병기 법안'을 이끌어냈다. 그는 "모두 냉정하게 한 발 한 발 추진한 결과"라며 "역사란 바꿀 수는 없지만 바로잡을 수는 있다"고 했다.
강원도 춘천 출신으로 중학교 졸업 후 부모를 따라 도미했다. 메릴랜드주립대 재학 시절엔 워싱턴 지역 대학 한인 총학생회장을 맡아, 거북선을 만들어 독립기념일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리더십을 보이기도 했다.
1987년 재일교포의 지문을 채취하는 일본 정부의 법안을 반대하는 운동을 펼치면서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것이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펼친 '위안부 사죄 결의안 채택 운동'으로 이어졌다.
청소년기를 나치 수용소에서 보낸 유대인 출신 톰 랜토스 하원 외교위원장이 조언을 해 줬다. "위안부를 한·일 과거사 문제로 접근하면 당신들에게 불리하다. 인류 보편적인 여성, 인권, 전쟁 피해의 관점으로 보도록 해야 한다." 랜토스 의원은 하원의원 70명에게서 공동 발의 서명을 받도록 권했고, 홍 전 회장은 신발이 닳도록 뛰어다니며 일일이 의원들의 사무실 문을 두드린 끝에 177명의 서명을 받아냈다. 결국 위안부는 '태평양 전쟁 시기 대표적 여성 인권 침해'의 사례로 인정받아 법안이 통과됐다.
'동해 병기 법안'을 상정했을 때 일본은 로비스트를 동원하며 집요한 방해 공작을 놓았다. "역시 국력이 약한 우리로선 한·일전이 불리했습니다. 하지만 세계사의 보편적 가치로만 얘기해도 충분히 이길 수 있었습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바다 이름이 어느 한 나라의 이름이 되는 것이 올바른가'란 논리로 주 의원들을 설득했고, 끝내 성공할 수 있었다.
홍 전 회장은 "앞으로 동해를 찾고 독도를 지키는 캠페인을 계속 펼쳐 나가겠다"고 했다. "'독도'는 내 주머니 속 100달러 지폐나 마찬가지지만 '동해'는 그 반대기 때문에 두 문제에서 대응하는 전략이 달라야 합니다." 최근 얼어붙은 한·일 관계의 해법에 대해서는 "일본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서로 손잡고 평화의 길로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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