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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조국發 오락가락 입시정책'에 학부모들 불안...대치동 학원가 '입시설명회' 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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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發 ‘오락가락 입시정책’에 불안한 학부모들, 대치동 학원가로
"믿을 곳은 학원뿐"…강남 유명 학원 ‘고교 입시 설명회’ 북적
일일이 휴대폰 검사 ‘철저 보안’…점심도 없이 4시간 강행군
"文대통령·유은혜 장관이 기쁜 소식 전해…대치동 집값 들썩"

"이제 믿을 곳은 학원밖에 없어요."

30일 오전 9시 50분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는 40대로 보이는 주부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이들은 시간에 쫓기듯 종종 걸음으로 대치동의 유명 A학원 건물로 향했다. A학원은 서울에서 여러 지점을 운영할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유명 학원이다.

학부모들은 이날 오전 10시 30분 A학원에서 마련한 ‘고교 선택 전략 설명회’에 참석하는 길이었다. 인근 B학원에서도 오전 10시에 ‘예비 고1 입시 설명회’가 열렸다. 한 학부모는 "혹시 A학원이 어디냐"는 기자의 물음에 얼굴도 쳐다보지 않은 채 "몰라요"라며 발길을 재촉했다. 강북에서 왔다는 한 학부모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갑작스럽게 바뀌는 교육정책 때문에 혼란스럽다"면서 "학원에서 정보라도 얻기 위해 아침부터 서둘렀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소집한 교육개혁 관계장관 회의에서 서울 주요 대학의 대입 정시 비율 확대와 2025년 자사고·외국어고·국제고 일괄 폐지 등이 공식화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여파로 갑자기 입시 정책이 변화하자 불안한 예비 고1 학부모들이 대치동 학원가로 몰려와 ‘정보 수집’에 나선 것이다.

학원 관계자는 "해마다 중⋅고등학생을 위한 입시설명회를 열어 왔지만, 올해는 특히 조 전 장관 딸 입시 논란 이후로 갑자기 입시 정책이 바뀔 것으로 예상되면서 학부모들의 입시 컨설팅 문의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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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학원에서 열린 ‘고교선택전략 설명회’에 참석한 학부모 수백명이 강연 내용을 경청하고 있다. /오유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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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검사 후 입장...첩보 영화’를 보는 듯한 학원 설명회
B학원은 엘리베이터 입구부터 학부모들의 줄이 이어졌다. 학부모들이 끊임 없이 건물로 들어서는 탓에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 더 빠를 정도였다. B학원에 도착하자, 직원 3명이 일일이 휴대전화 문자를 확인했다. 학원에 연락처가 등록된 학부모가 사전 예약한 경우에만 참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A학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두 학원 모두 문자를 확인한 후에야 미리 준비된 자료와 소책자를 나눠 줬다. A학원에서는 이마저 부족해 설명회 중간에 급하게 복사한 자료를 추가로 배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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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이 학부모들에게 발송한 휴대폰 메시지. 10월 한 달 사이 1만명이 넘는 학부모가 학원 설명회를 찾았다고 적혀 있다. /오유신 기자


B학원은 150명 규모의 본관 강의실이 가득 차자 바로 옆 건물 별관에 학부모들을 모아놓고 TV 모니터를 통해 현장 실황을 전달했다. 200명 규모의 A학원 강의실도 학부모로 꽉 찼다. 학원 아르바이트 학생이 강의실 모습을 촬영했고, 학원 관계자의 ‘수강 결제’를 안내하는 인사말로 설명회를 시작했다. 설명회 중간중간 휴대전화 카메라를 촬영하는 소리도 들렸다. 강사가 따로 준비한 PPT 자료가 5대의 대형 TV를 통해 나오자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런 종류의 입시 설명회는 최근 학원가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A학원은 최근 등록된 학부모들에게 ‘지난 10월 진행한 고교선택전략 설명회 기본편에 총 1만 명이 넘는 학부모님을 모시고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이에 더 깊이를 더한 내용으로 심화편을 진행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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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학원에서 학부모들이 ‘예비 고1 입시 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 학원 엘리베이터 앞에서 줄을 서고 있다. /오유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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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도 없이 4시간 연속 강연… "오락가락 정책에 학부모도 학생도 힘들어"
A학원 설명회에서는 다음 달 발표될 ‘고교서열화 해소 방안’에 대한 전망과 분석이 나왔다. 강남 8학군 부활에 대한 기대감도 자연스럽게 언급됐다.

강사 C씨는 설명회에서 "문 대통령과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 학부모님들께 기쁜 소식을 전해줬다"면서 "정시가 최소 30%로 확대되면 실제로는 37~38% 수준까지 늘어나는 것과 같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서 수능 최저 등급을 충족하지 못하면 그 인원이 정시로 이월되기 때문이다. C씨는 "결국 정시가 확대될수록 강남 지역 학생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대치동 집값이 들썩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강사 D씨는 "(2025년으로 예정된) 일반고 전환까지는 시간이 아직 남아 있다"면서 "아이들을 자사고와 일반고 중에서 어디로 다니게 할지 결정하고, 쇼핑하듯이 학원 설명회를 2~3번 다니면서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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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오후 서울 대치동 한 학원에서 열린 고교 입시 전략 설명회를 마치고 학원을 나서는 학부모들. 이날 설명회는 쉬는 시간 없이 4시간 연속 계속됐다. /오유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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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전문가 E씨는 정시 확대 방침에 대해 "강남은 좋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SKY(서울·고려·연세대)에서는 정시 인원을 늘리는 것을 원치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냉정하게 말해서 SKY 인기학과의 경우, 정시 비율이 늘어날수록 삼수생, 사수생들의 합격률도 높아진다"면서 "졸업 후 기수 문화도 있는데 같은 신입생끼리 나이 차가 많으면 좋아하겠냐"고 했다. 그러면서 강북 지역의 우울한 분위기도 전했다. 그는 "강남이 아니라도 사교육이 발달한 지역이 있지만, 이곳은 주로 수시전형으로 합격한 인원이 상대적으로 많았는데 이제 매우 힘든 상황이 됐다"고 했다.

이날 설명회는 4시간 연속으로 진행됐다. 쉬는 시간도 점심시간도 없는 강행군이었다. 눈치가 보여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였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설명회가 끝나고 학원을 빠져나오는 학부모들은 "아휴, 힘들어"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고교생 아들을 둔 한 아버지는 "들쑥날쑥하는 교육정책 때문에 우리 아이가 더 힘들어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광진구에서 온 한 학부모는 "입시 정보를 학교를 통해서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니 교육 이슈가 나올 때마다 학원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푸념했다.

[오유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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