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2 (화)

조국 대전으로 갈라선 진보, 다시 뭉칠 가능성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10월 23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호송차에 오르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넥스트 조국’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 적어도 청와대 내에서는.”

10월 22일 만난 청와대 고위인사의 말이다. ‘넥스트 조국’, 다시 말해 ‘조국 이후’라는 말의 맥락은 “‘조국 수호’ 외에는 답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답을 못찾고 있다”는 것이다. 여권 주변에서는 ‘서초동·여의도 검찰개혁 촛불집회’로 ‘조국 대권플랜’이 시작된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 여권 핵심 인사들 사이에서 기정사실화된 면도 있다. 민주당의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전부터 진실이 뭔지, 논란이 되는 부분을 유심히 들여다봤는데 대부분 해명되고 남을 문제였다. 이제 반전만 남았다. 총선 전까지 여러 후보들을 가급적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좋다.” 설령 가족이 구속되고 본인이 조사받는 상황이 되더라도 잠재적 대선후보군에서 조 전 장관이 제외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청와대 측 인사가 전한 현재 내부 분위기는 달랐다. 장관 후보자 시절인 지난 8월 말~9월 초 이른바 ‘청와대 내 친조그룹’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사태가 이만큼 진전된 상황에서 대통령의 의중이 그쪽에 실려 있는지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이야기다.

청와대 조국 대권플랜? “사실이 아니다”

미증유의 혼란과 분열은 청와대·정치권만의 일이 아니다. 조국 사태로 갈라지고 있는 것은 정권 지지층, 더 넓게 보면 지지기반인 진보진영 전체로 확대됐다. 10월 24일 새벽 조 전 장관 부인 정경심씨의 구속 여부는 하나의 분기점이었다.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되었다면 ‘개혁에 저항하는 검찰적폐 세력의 조국 죽이기’라는 비판에 힘이 실렸을 터다. 검찰개혁의 당위성이라는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봉합이 앞당겨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열은 더 심대하게, 오래갈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가 보수 분열의 시금석이 된 것처럼, ‘조국 사태’에 대한 태도가 앞으로 어디까지 진행될지 예상하기 힘든 진보 분열의 시작점이 될지도 모른다.

솔직히 기자의 입장에서는 난감하다. 친소관계나 흔한 정파적 분류법만으로 조국 사태에 대한 태도를 예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조국 전 장관의 임명 전 후보 사퇴를 주장한 <경향신문> 칼럼에서 “글을 쓰는 것은 이별하는 것임을 안다”면서 “지근거리에서 몇 번 만나본 사람으로서 고언하자면 사퇴하는 것이 맞다”고 적었다. 현실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던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이번 국면에서 조국 장관을 적극 옹호하고 나서 주목을 끌었다. 과거 운동권 계보로 치면 이 교수는 PD(민중민주) 이론의 기초를 닦은 인사다. 반면 조 전 장관은 ND(민족민주)의 입장에서 PD 이론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었다. 두 사람을 공통으로 묶는 것은 서울사회과학연구소(서사연) 활동이었다. 정치적 입장은 달랐지만 이른바 ‘NL(민족해방)파’에 대한 비판활동의 근거로 서사연 활동을 함께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사연에서 두 사람과 함께 활동했던 신현준 성공회대 교수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이번 사태에서 두 사람의 행보를 맹비난했다.

시민사회도 분열로 깊은 내상을 입었다.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김경율 회계사의 SNS 글을 둘러싼 논란이 단적이다. 지난 9월 말 아침 일찍 “조국은 적폐청산 컨트롤타워인 민정수석의 자리에서 시원하게 말아드셨다”며 ‘권력 주변을 맴도는 시민사회 주변의 교수, 변호사, 전문가들’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 글을 올려 주목을 받았다. 법무부 장관 이전에 민정수석 때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에 정관 적임자인지 문제제기를 해야 하지만, 시민사회조차 사적 친분 혹은 권력과의 관계 때문에 목소리 내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비판이다. 조 전 장관은 참여연대 부운영위원장을 역임한 경력이 있다.

참여연대 내부게시판엔 김경율 회계사 글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면 회원을 탈퇴하겠다는 등의 글이 쏟아졌다. 참여연대는 이튿날 김 회계사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기로 했다는 상임집행위원회의 결정을 공지했다. 참여연대는 “김 회계사가 글을 올리기 이전에 이미 집행위원장직 사임 및 회원 탈퇴 의사를 참여연대에 알려왔었다”면서도 “그러나 김 위원장의 해당 글은 시민사회 활동에 참여해온 사람들에 대한 폄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징계위 회부 이유를 밝혔다. 공지 이후에는 반대로 김 회계사 입장을 지지하던 회원들의 항의·탈퇴 요구 글이 회원게시판 등에 올라왔다.

참여연대와 반대로 “자진사퇴가 바람직하다”는 성명(9월 8일)을 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상당한 내홍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조직이 없는 참여연대와 달리 전국 지역조직이 있는 경실련의 몇몇 지역조직에서 성명에 이의를 제기하며 논란이 벌어졌었다. 윤순철 경실련 사무총장은 “대외적으로 성명이 나갈 때는 정책과 상임집행위원장, 사무총장의 합의를 통해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검찰개혁에는 국민 모두가 동의하지만 조 장관을 둘러싸고 제기된 의혹들은 국민 시각이 갈리고 지속적으로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해 냈던 성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군사독재정권과 싸울 때는 단일대오가 중요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입장이나 견해 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항상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시각차를 두고 진보 분열 등의 표현을 쓰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덧붙였다.

조국 두고 시민사회 심각한 진통·내홍

임순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장은 “조국 이후 시민사회가 갈라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제 서초동에 나간 사람들 모두가 ‘조국 수호’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고 개중에는 검찰개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다”며 “하지만 외부에 분열로 비치면 안 되기 때문에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조 전 장관, 신현준 교수 등과 함께 ‘서사연’ 멤버로 활동했던 전효관 문화예술위원회 사무처장은 “공개적으로 의사표시를 하지는 않지만 조국 문제가 분기점이 되고 있고 가치가 분화하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 운동지향성을 공유했을지는 몰라도 현재의 생각은 서로 확인해본 적이 없는데, 조국 사태를 계기로 갑자기 생활 감수성에서부터 정치적 견해까지 서로 다른 태도를 확인하며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신용철 정책컨설팅 그룹 더체인지플랜 선임연구원은 “서초동 촛불에 나온 사람들은 진보진영이라기보다 정치검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보통의 평범한 국민들로 봐야 한다”며 “과거 노무현 대통령 때처럼 불행한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부채의식이 이들의 동력”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을 그렇게 만든 것은 한국 정치의 후진성 때문”이라며 “정치로 풀어내지 못하고 율사들이 국회에 들어가 문제가 생기면 고소·고발을 통해 검찰에 그 판단을 넘겼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검찰이 힘을 갖게 만든 것은 후진적인 정치구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그는 “종전의 낡은 ‘진보 대 보수’의 구도는 이미 허물어졌고, 지금은 새로운 유형의 진보를 고민해야 할 시기”라며 “빠르면 내년 총선이나 다음 대선에는 새로운 정치바람이 불 것인데 반드시 좋은 결과만 나오라는 법은 없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면 현재 20대의 30%가 스스로 보수층을 자임하는 상황을 감안해 유추해보면 외국처럼 극우정당이 득세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현재의 진보는 386 안에 갇힌 진보다. 새로운 진보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 그게 문제다. 한국 진보의 미래는 어둡다.” 분열을 재통합할 가치나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보에 주어진 숙제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최신 뉴스두고 두고 읽는 뉴스인기 무료만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