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스틸 컷 ©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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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최근 개봉한 영화 한 편을 두고 남녀간 댓글 전쟁이 치열하다.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이 근래 심화돼 온 남녀 갈등을 폭발시키는 마중물이 돼버렸다. 이 영화와 관련된 기사마다 수백개의 댓글이 달리는데, 대부분 서로 다른 성별을 비난하고 비하하는 내용이다.
'평점 테러'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유명 포털 사이트에서 영화에 대해 평점을 매길 수 있는데, 누군가는 영화에 만점을 주고 누군가는 1점을 준다. 수지와 최우식, 유아인 등 '82년생 김지영'의 개봉을 알리고 응원한 연예인들의 SNS는 여러 의미로 화제가 됐다. 다른 영화였다면 그저 동료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평범한 행동이었을텐데, 유독 이 영화 관련 게시물에 대해서는 자의적인 해석이 많다.
'82년생 김지영'이 남녀 갈등의 장이 된 이유는 뭘까.
◇ 페미니즘='남혐'?
원작 소설의 상징성이 크다는 점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2016년 10월 민음사에서 발행된 '82년생 김지영'(저자 조남주)은 여성 독자들을 중심으로 크게 반향을 일으켰다. 82년생 여주인공 김지영의 삶을 보여주는 이 소설은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여자로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일화들을 한 사람의 인생에 녹아냈고 공감을 샀다.
페미니즘과 관련해 '82년생 김지영'은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작품으로 여겨졌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짚어냈기 때문이다. '딸보다 아들이 먼저'인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고, 여성이 조심하지 않아서 성폭력을 당했다는 인식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으며, 부부 중 일을 먼저 포기해야 하는 사람은 당연히 '엄마'인 여성이 돼야한다는 것 역시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이 책을 통해 더욱 광범위하게 공유됐다.
'82년생 김지영'의 발간 후 약 3년간 우리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전세계적인 이슈가 됐던 '미투' 운동이 연예계와 문화계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성폭력을 당하고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은 '나도 당했다'며 '미투'에 동참했고, 그로 인해 많은 가해자들이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왔고 고개를 숙였다. 그뿐 아니라 사회에 만연한 여러 차별들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들도 커졌다.
'미투'로 대변되는 사회적 물결은 생각의 변화가 행동으로 이어진 결과라 해석할 수 있다. '82년생 김지영'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삶에 대한 생각에 변화를 일으키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페미니즘 사상을 설파하는 책은 아니었지만, 페미니즘을 대중적으로 전파시키는 데 하나의 디딤돌이 됐다.
하지만 여기에 '혐오'라는 카테고리가 끼어들면서 상황이 다양하게 흘렀다. 급작스러운 변화가 있으면 이에 대해 반발하는 쪽도 생기게 마련이다. 같은 사회라도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과 질, 내용이 다른만큼 대두된 페미니즘적 변화들에 대해 '지나치다' 여기는 이들과 '아직 부족하다'는 이들이 공존했다. 그리고 일부에서 이 같은 생각차와 속도차를 '혐오'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여혐'(여성혐오) '남혐'(남성혐오)이라는 말이 등장했고, 성차별을 타파하고 여성들의 인권을 신장시키면서 시작된 페미니즘을 '남혐'의 동의어로 여기는 이들도 생겼다.
결국 페미니즘을 '남혐'으로 인식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 역시 진행된다. 하지만 '82년생 김지영'은 '남혐' 영화로 정의하기에는 그렇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
◇ '82년생 김지영'은 '남혐' 영화인가
'82년생 김지영'은 82년생으로 태어나 아이를 키우고 있는 30대 주부 김지영(정유미 분)이 갑자기 이상한 '빙의 현상'을 겪으면서 생기는 일을 그린다. 김지영은 '빙의 현상'을 통해 자신의 엄마가 되기도, 외할머니가 되기도 하며, 아이를 낳다가 죽은 대학 동아리 선배가 되기도 한다. 김지영의 현실과 과거 김지영이 겪은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중첩되면서 대한민국 여성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법한 '부당함'에 대한 정서를 전달한다.
여성들이 공감할 법한 이야기를 여성의 입장으로 그려냈다고 해서 이 영화를 ''남혐'을 조장하는 프로파간다 영화'로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남성을 가해자로, 여성을 피해자로만 그리는 이분법적인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공유가 연기한 주인공 지영의 남편 대현은 사회적 시스템 속에서 어쩔 수 없는 한계를 품었을 지언정, 아내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김지영을 망가뜨린 가해자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생을 함께 책임지는 동반자로서의 의무를 다하고자 하는 인물이다. 남동생 지석(김성철 분)에 대한 묘사도 마찬가지다. 지석은 남자이기 때문에 가정에서 아무 생각없이 여러 특혜들을 누렸지만, 가부장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누나들과의 소통 속에서 조금 더 그들을 이해하게 되고, 이를 통해 변화하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만약 '82년생 김지영'이 단순히 '남혐'에 기초한 작품이었다면 이 같은 묘사는 불가능할 것이다.
'82년생 김지영'은 '혐오'가 아닌 '공감'을 추구하는 영화로 보는 것이 맞다. "그때는 그렇게 살았다"고 말하며, 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당연하게 여겼던 50, 60대 어머니의 삶, 그보다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성이기 때문에 양보하고 포기해야할 것이 많은 여성의 삶에 대해 공감해볼 수 있는 영화다.
영화는 차별 문제의 원인을 남성으로 돌리지 않는다. 오히려 차별의 원인이 되는 가부장제도라는 틀 속에서 변화를 추구하고 받아들이는 여성과 남성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영화 속 인물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혐오나 분열이 아닌 가족과 배우자, 자녀, 친구의 삶을 향한 '공감'이다.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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