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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가 모여 그들만의 동그라미를 그린다고 해서 ×가 ○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수많은 거짓이 모여 그들만의 세력을 이룬다고 해서 거짓이 참이 되지는 않습니다.

팩트는 아무리 미미하더라도 팩트입니다. 거짓은 아무리 목소리를 높이더라도 거짓입니다. 진정한 언론은 사실만을 바라보고 사실만을 전합니다.

저널리즘, 가짜 뉴스를 극복하라

이재경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기고

가짜 뉴스의 뿌리는 깊다. 인류의 거짓말과 역사를 같이한다. 우리 현대사에도 가짜 뉴스의 사례는 많다. "서울 시민 여러분 안심하고 서울을 지키십시오. 정부는 수도 서울을 사수합니다." 1950년 6월 27일 밤 9시 이승만 대통령의 목소리로 전달된 라디오방송 내용이다. 다음 날 새벽 국군은 한강 인도교를 폭파했다. 기록에 따르면, 현장에서 피란민 8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통령의 메시지를 믿고 남아 있던 서울 시민은 3개월 뒤 수복 때까지 공산 점령군 치하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전쟁 상황이었지만, 이 방송은 가짜 뉴스였다.

"탁 하고 책상을 치니, 억 하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사망했다." 1987년 1월 19일 강민창 치안본부장이 박종철 사망 사건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사인을 쇼크사로 몰고 가기 위해 그렇게 말했다. 텔레비전은 이 회견을 생방송으로 중계했다. 군부독재 시대를 상징하는 가짜 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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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초 필리핀에서 붙잡혀 돌아온 김대업씨도 이회창 후보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가하는 병역 비리를 폭로해 당시 대선 결과를 바꾸어 놓았다. 김씨가 했던 기자회견 역시 가짜 뉴스였다.

8월부터는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말의 전쟁이 온 나라를 삼켜버렸다. 청문회와 기자 설명회 등이 열렸으나 진실은 극단적으로 상대화됐다. 유력 인사들의 페이스북 메시지나 유튜브 방송은 내용의 진실성보다 진영적 효용성만을 강조해 각종 가짜 뉴스를 전파하는 온상이 돼버렸다.

가짜 뉴스는 과거 프로파간다(선동)라고 불렀다. 프로파간다는 히틀러의 나치 세력이 선동의 귀재라는 괴벨스의 지휘하에 치밀하게 활용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미국도 전담 부서를 만들어 활용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이 대거 이 작업에 투입됐다. 북한이 살포했던 이른바 '삐라'라는 전단도 요즘 표현으로 하면 가짜 뉴스다.

디지털 혁명으로 세상이 뒤집혔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가 주력 통신수단으로 자리 잡으며 가짜 뉴스는 즉시 전 국민에게 전달된다. 피해 규모와 강도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이제 가짜 뉴스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 러시아 해커들이 조작해 전파한 가짜 뉴스가 어떻게 미 대선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확인하려는 작업이 뮬러 특검의 활동이었다.

그런가 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비판적으로 대하는 뉴욕타임스, CNN 등의 보도를 가짜 뉴스라고 몰아붙인다. 가짜 뉴스가 대통령에 의해 적극적으로 국가 운영에 동원되는 사례다. 이에 대항해 워싱턴포스트는 매일 트럼프가 올리는 트위터 메시지들을 확인해 어떤 내용이 거짓인지를 찾아낸다. 지난 4월 29일, 포스트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뒤, 무려 만 개가 넘는 거짓 정보를 트윗했다고 보도했다. 하루에 12개꼴로 가짜 뉴스를 발신한 셈이라는 게 이 신문의 주장이다. 신문이 어떻게 진실 확인자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 디지털 세상에도 가짜 뉴스는 넘쳐난다. 지난 5월에는 광주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각종 가짜 뉴스가 기승을 부렸다. 제주도에 온 난민들에 대한 가짜 뉴스도 한동안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시끄럽게 했다.

가짜 뉴스는 페이크 뉴스(fake news)라는 영어 표현을 널리 쓰지만, 거짓 정보(misinformation), 정보 공작을 위한 조작 정보(disinformation), 또는 날조된 뉴스(made-up news)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각 용어가 의미하는 바가 다르고, 생산해 유포하는 주체 또한 다양한 현실을 고려하면 가짜 뉴스의 범람은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전제로 하는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심각한 위기에 빠트리고 있다.

하버드 대학 케네디 스쿨의 패터슨 교수는 "사실이 소설로 대체되면, 예견되는 결과는 정치적 불신과 사회 갈등의 극단화"일 수밖에 없다고 썼다.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칼럼니스트였던 월터 리프먼은 "거짓말을 찾아낼 수 있는 정보가 없는 공동체에는 자유가 있을 수 없다"고도 말했다.

지난 6월 미국의 퓨(Pew) 연구소는 "신뢰, 사실, 그리고 민주주의(Trust, Facts, and Democracy)"란 제목의 보고서를 내놨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사람들은 가짜 뉴스를 만들어내는 주 세력은 정치인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임무는 기자들이 담당해야 한다고 믿는다.

한국 언론에 대한 시민의 신뢰는 높지 않다. 정파주의 저널리즘이 가장 큰 장애물이다. 두려움 없이 사실을 파고들 수 있는 취재 인력의 부족도 심각한 문제다. 그래도 가짜 뉴스 문제를 해결할 희망의 씨앗은 저널리즘에 있다. 컬럼비아 저널리즘 스쿨의 슈츤 교수에 따르면, 이 학교가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신의 선입관을 넘어 사실을 취재하는 일"이다. 우리 기자들도 하루빨리 정파주의의 덫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저널리즘은 권력을 대리하는 정치 행위가 아니다. 저널리즘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짜 뉴스의 홍수 속에서 시민의 자유와 민주적 의사 결정 문화를 지탱하는 든든한 버팀목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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