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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3 (일)

[기자의 시각] 포토라인 눈치 보는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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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박국희 사회부 기자


검찰에만 포토라인이 있는 게 아니다. 법원에도 있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미체포 피의자는 영장 실질 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해야 한다. 이때 법원에 포토라인이 만들어진다.

법원 포토라인이 고약한 것은 검찰처럼 빠져나갈 수가 없다는 점이다. 검찰엔 직원 전용 지하 주차장을 통해 조사실로 몰래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법원에는 이런 비밀 통로가 없다. 서울중앙지법의 영장 심사는 법정 두 곳에서 이뤄지는데, 이곳으로 가는 출입구는 딱 한 곳이다. 법원 포토라인은 이 법정 출입구 앞에 쳐진다.

검찰청사와 달리 법정 출입구는 좁아서 사고도 잦다. 클럽 버닝썬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 3월 핵심 피의자가 영장 심사를 받으러 왔다. 카메라 수십 대가 순식간에 엉켜 아수라장이 됐다. 이 과정에서 변호인이 카메라에 이마를 찍혀 다쳤다. 변호인은 법원에 공식으로 항의했다. 법원은 잠시 논의를 하는가 싶더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랬던 법원이 포토라인을 의식하기 시작한 건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다. 검찰이 자체 개혁 방안으로 포토라인 폐지 방침을 선제적으로 밝히자, 경찰 역시 공개 소환과 포토라인을 없애겠다고 화답했다. 경찰과 검찰 단계에서 포토라인에 서지 않던 피의자들이 졸지에 법원 포토라인에서 처음 언론에 공개되는 상황이 왔다. 더군다나 그 첫 대상자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내인 정경심 교수가 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법원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내 사진은 특종 중의 특종이라고 한다"며 철저히 대외 노출을 피했던 정 교수에 대해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면, 정 교수는 처음으로 법원 포토라인 앞에 서게 된다.

법원은 부랴부랴 고심하는 분위기다. 구치소에서 호송차를 타고 법원에 오는 구속 피고인들이 이용하는 차량 통로를 검찰처럼 비밀 통로로 쓰자는 아이디어까지 나왔다고 한다. "왜 법원만 포토라인을 유지하느냐"는 말이 나올까봐 판사들이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검찰이 비판받는 걸 본 법원이 또다시 정 교수를 법원 포토라인 폐지의 첫 수혜자로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시점의 문제일 뿐 법원도 곧 포토라인을 폐지할 수 있겠지만, 이 문제를 두고 그동안 법원이 피의자 인권이나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해 얼마나 고민해 봤는지는 의문이다. "이미 검찰 포토라인에 섰던 피의자들이 법원 포토라인에 한 번 더 서는 게 대수냐"는 게 사실 대부분 판사들의 인식이었기 때문이다.

판사들은 검찰 개혁 주장이 나오면 "비대한 검찰 권력을 견제하고 통제하는 것은 결국 법원뿐"이라고 호기롭게 말해왔다. 국민이 법원에 바라는 것도 그렇게 세태에 휘둘리지 않고 사회 정의의 최후 보루로서 든든한 역할을 해달라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시류에 등 떠밀려 여론의 눈치를 살피는 데 급급한 법원 모습을 볼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박국희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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