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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美 직업관료들, 대통령보다 애국심·법적 의무감 앞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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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우크라이나 대사 등 전·현직 관리들 '탄핵조사' 릴레이 증언

대통령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외교 이용하는 행태 용납 못해

줄리아니·손런드·멀베이니 '우크라 비선외교 3인방'으로 지목

지난 16일(현지 시각) 미 하원 외교·정보·정부감독 위원회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 조사 합동 청문회. 35년 경력의 베테랑 외교관인 마이클 매킨리 국무부 전 수석 보좌관이 증언자로 출석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최측근이었던 그가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조사 청문회에 증언자로 나온 것이다.

매킨리 전 수석 보좌관은 불과 닷새 전인 11일 국무부에 사표를 냈다. 그는 청문회에서 "국무부가 직업 외교관들의 의회 증언을 막고 국내 정치적 목적을 위해 해외 대사들을 이용하기에 사표를 냈다"고 밝혔다. 특히 요바노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사가 부당하게 경질당한 것도 그가 증언에 나선 이유였다. 요바노비치 전 대사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바이든 부자(父子)에 대한 수사 압력을 가하는 데 미온적이라는 등의 이유로 임기가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5월 교체됐다.

조선일보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 대통령이 18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사상 최초로 여성들만이 참가한 우주유영(宇宙游泳)에 나선 미 항공우주국(NASA) 여성우주비행사들과 화상통화로 대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왼쪽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 오른쪽은 트럼프의 장녀 이방카 백악관 선임고문.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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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주도하는 미 하원은 현재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정부에 정적(政敵)인 조 바이든 부자에 대한 수사를 압박하기 위해 3억9100만달러의 군사 원조를 유예시켰다는 의혹에 대해 조사 중이다. 사실일 경우 개인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대통령직을 이용한 셈이어서 탄핵 사유가 된다. 트럼프는 이 탄핵 조사를 "엉터리 인민재판"이라고 비난했고, 팻 시펄로니 백악관 법률고문은 지난 8일 "관료들이 증언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서한을 민주당 지도부에 보내며 행정부 관료들의 의회 증언도 금지했다.

백악관의 이 같은 지시는 미국의 직업 관료들, 특히 직업 외교관들에게 먹혀들지 않고 있다. 지시를 거부하고 증언에 나서는 사람은 매킨리 전 수석 보좌관뿐만이 아니다. 커트 볼커 전 우크라이나 특별대표도 최근 사표를 내고 의회 청문회에 나가 증언했다. 오는 22일엔 트럼프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군사 원조를 조건부로 한 것은 "미친 짓"이라는 문자 메시지를 국무부에 보낸 현직 우크라이나 대사도 증언할 예정이다. 이들을 포함해 전·현직 직업 관료들의 의회 증언이 줄을 잇고 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목하는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비선(�線) 외교 3인방'은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와 고든 손런드 유럽연합 대사,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이다. 손런드는 트럼프에게 거액의 기부금을 내고 대사가 된 호텔 기업인 출신이다. 백악관 국가안보위원회(NSC)의 러시아 담당 고위 관리였던 피오나 힐은 14일 의회 증언에서 "대통령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외교를 이용하려는 이들 3명의 수상한 행동에 깜짝 놀라, 7월 초 존 볼턴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에게 보고했다"며 "볼턴은 '그들이 무슨 마약 거래를 꾸미든, 난 그것과는 관련이 없다'며 '당장 백악관 법률팀에 통보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NSC 차원에서도 트럼프의 비선인 줄리아니 등에 의해 우크라이나에 불법적인 외교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증언이었다. 17일엔 트럼프가 발탁한 고든 손런드 대사까지 증언자로 나와 "트럼프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자신에게 정치적 도움이 될 수사 재개를 약속하지 않으면, 그를 백악관에 초청할 생각이 없었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전·현직 관리들의 증언을 막은 '행정부 특권(executive privilege)'이 무시되고, 한두 명이 먼저 증언하자 물꼬가 터진 듯 추가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며 "이들의 증언은 일관되게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 압력을 가해 정적에게 오물을 끼얹고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전했다.

제이미 래스킨 민주당 하원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직업 관료들의 잇단 증언에 대해 "그들은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에 참여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며 "애국심과 법적 의무감에서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 특별검사였던 닉 애커먼은 "그들은 백악관 법률고문의 '증언 거부' 성명보다 의회 소환장에 응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며 "미국의 직업 공무원들은 미심쩍은 것들에 대한 관용도가 낮다"고 말했다. 그는 "닉슨도 미 국세청(IRS)을 동원해 정적들을 세무 조사하려고 했지만, 공무원들은 그런 불법적이고 미친 짓에 관여하려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철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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