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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일사일언] 차돌박이 된장 국수를 먹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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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서희선 한국콘텐츠진흥원 부장


차돌박이 깻잎 된장 국수를 먹었다. 외근을 다녀오느라 때를 놓친 점심이었다. 몹시 허기졌다. 백화점 식당가에 앉아 주문한 메뉴가 나오자마자 급히 먹기 시작했다. 한 그릇을 말끔히 비우니, 이번엔 배가 터질 것 같았다. 숨 쉬기 힘들 만큼. 나는 생각했다. '왜 항상 배가 고프거나, 배가 터지거나, 혹은 지루하거나, 일이 많아서 미치겠거나 하는 극단적 상황일까? 내 인생은 왜 이런 걸까? 왜 내 인생에는 중용이 없는 걸까?'

아, '중용'이라고 했다. 그것이 무엇이기에, 차돌박이 깻잎 된장 국수를 먹는 이 와중에 식탁 위에 늘 놓여 있는 후추통처럼 튀어나올까? 네이버 사전에서 중용의 뜻을 찾아보기로 했다. '중용: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아니한,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나 정도.'

그러니까 내 급한 점심시간에도 중용의 순간은 있었던 것이다. 가령 국수를 20분간 먹었다고 할 때, 배가 매우 고팠던 초반 7분의 상황, 그리고 배가 부른데 마저 먹었던 후반 5분의 상황을 제외하면, 거의 8분간은 배가 고프지도, 부르지도 않은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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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도 지루하지도, 바빠서 미칠 것 같지도 않은 시간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결핍과 과잉만 기억했다. 평온했던 시간은 주목하지 않았다. 결국 배가 고프거나, 배가 터지거나의 인생을 선택한 건 내 위장이 아니라, 내 기억의 앵글인 것이다.

배고프지도 않고, 배 터지지도 않은, 바쁘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았던, 밋밋한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인생은 그런 밋밋한 시간이 훨씬 많은데 말이다. 차돌박이 깻잎 된장 국수의 뜨끈한 국물과 쫄깃한 국수 한 젓가락을 천천히 씹어 넘기면서 당분간 중용적 일상에 집중해야겠다. 그나저나, 차돌박이 깻잎 된장 국수는 꽤 맛있다. 차돌박이의 고소함과 깻잎의 산뜻함이 어우러진 중용의 맛이랄까?



[서희선 한국콘텐츠진흥원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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