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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금)

마약인가, 명약인가… 미국판 만병통치 CBD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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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화 10개월, 미국이 들썩]

- 한번 잡숴봐 '그린 러시'

불면증·통증 해소, 암 치료 소문도

화장품 키엘·오리진스부터 아이스크림까지 CBD 함유 열풍

- 환각 성분 낮은 대마초 일종

3년 후 美서 24조원 규모로 성장… 뉴욕 근교서 500곳이 원료 재배

"피로·관절염에 큰 효과 봤다"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엇갈려

조선일보

뉴욕=오윤희 특파원


지난 17일(현지 시각) 뉴욕 맨해튼 소호에 있는 웰니스(wellness·종합적 건강) 전문점 인스케이프. 불면증 치료제와 통증 완화제, 피부 미용과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되는 상품 등이 빼곡히 진열된 매장 한편에 'CBD'라는 생소한 이름의 코너가 따로 마련돼 있었다. 밝은 미소를 띠며 다가온 점원은 "요즘 CBD 제품을 찾는 고객이 많이 늘었다. 나도 CBD 성분이 들어간 수면 유도제를 침대 곁에 두고 산다"고 말했다.

CBD는 우리나라에는 생소하지만, 요즘 뉴욕 등 미국 각지에서는 매우 뜨거운 이슈 가운데 하나다. CBD는 '캐나비다이올(Cannabidiol)'의 약자로, 대마초(Cannabis)의 일종인 헴프(Hemp)라는 식물에 많이 들어 있는 성분이다. 국내에선 마약의 대명사로 인식하는 대마초는 크게 마리화나와 헴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마리화나에는 마약 특유의 환각 효과를 일으키는 성분인 THC(Tetrahydrocannabinol)가 대량 함유돼 있는 반면, CBD 함량은 낮다. 이에 비해 헴프에는 환각 성분인 THC는 0.3% 미만으로 거의 포함돼 있지 않은 반면, CBD 성분은 대량 함유돼 있다.

CBD는 통증과 스트레스 완화, 염증 개선뿐 아니라 암 치료에까지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최근 미용·건강 식품 업계에서 각광받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 브라이트 필드 그룹은 "2022년까지 미국 CBD 시장은 대략 200억달러(약 24조원)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에 부는 '그린 러시'

미국에서 CBD 시장이 활성화된 계기는 작년 12월 헴프 재배를 합법화하고, 마약 관련법 규제에서 헴프를 제외한다는 내용의 '연방 농업법(Farm Bill)'이 통과되면서부터다. 이 법안에 따르면, 헴프에서 추출한 THC 농도 0.3% 이하 CBD 오일은 합법적으로 판매할 수 있다. 법안이 통과된 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았지만, CBD 시장은 NBC 등 미국 언론이 '그린 러시(green rush)'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로 폭발적 기세로 성장하고 있다. 맨해튼 거리를 걷다 보면 'CBD'라는 간판이 붙은 매장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세포라 같은 화장품 체인점과 약국 체인점에서도 CBD 제품을 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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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CBD(Cannabidiol) 제품 전문 판매점에서 손님들이 물건을 둘러보고 있다. 올 들어 CBD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그동안 '대마초 성분 제품'이라는 이유로 판매에 소극적이었던 대형 유통업체들도 CBD 제품 판매에 나서고 있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화장품 브랜드 키엘이 대마초 일종인 헴프에서 추출한 CBD 성분을 넣어 만든 페이셜 오일. /뉴욕=오윤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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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D 제품 판매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화장품 업계다.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화장품 브랜드인 키엘과 오리진스는 각각 CBD 성분이 들어간 페이셜 오일과 마스크 팩을 최근 출시했다.

통증 완화 효과가 있는 CBD 크림 등도 운동선수들 사이에서 인기다. 골프 매체 골프다이제스트에 따르면, 마스터스에서 2승을 거둔 버바 왓슨, 2009년 US오픈 챔피언 루커스 글로버 등이 CBD 관련 제품과 후원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불면증 개선 약품, 스트레스 완화 오일, 숙취 해소 패치 등 CBD를 기본 성분으로 한 다양한 제품이 속속 출시되는 추세다. 심지어 미국 아이스크림 브랜드 벤 앤드 제리가 CBD 성분이 들어간 아이스크림 개발을 준비하고 있다고 알려지는 등 CBD 인기는 이제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다.

백화점·약국서도 관련 제품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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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초 제품'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CBD 제품 취급에 소극적이던 유통 업체 태도도 CBD 시장의 성장에 힘입어 서서히 바뀌고 있다. 올해 초엔 고급 백화점인 니먼 마커스가 온라인으로 CBD 제품을 팔기 시작했고, '바니스'도 베벌리힐스 매장에 '더 하이 엔드(The High End)'라는 섹션을 만들어 CBD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바니스는 "다양한 종류의 고품격, 고품질 CBD 라이프스타일 용품을 판매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대형 약국 체인 CVS와 월그린도 올해 3월 CBD 제품 판매를 시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CVS의 마이크 드 안젤리스 대변인은 USA투데이에 "식용 제품 외 화장품, 연고, 크림, 로션 등을 판매할 것"이라고 말했다. 월그린 역시 미 전역 매장 1500곳에서 CBD가 들어간 제품을 선별해 판매할 예정이다.

야후 파이낸스는 "CBD의 인기 덕택에 이제 헴프는 금지 대상이 아니라, 농작물의 한 종류로 취급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수익성이 좋은 작물로 헴프를 재배하는 농가도 증가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뉴욕 근교에서 허가를 받고 헴프를 재배하는 농가는 약 500곳에 이른다. 지난 6월 뉴욕주가 CBD를 얻을 상업적 목적으로 대마초의 일종인 헴프 재배를 법적으로 허용한 지 약 두 달 만이다.

CBD의 허와 실

시장에서 확실히 성공한 것과는 달리 CBD의 실제 효용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의견이 갈리는 상황이다. CBD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이를 차세대 만병통치약처럼 신봉하는 분위기다. 전직 교사에서 헴프를 재배하는 농부로 변신한 앨런 간델만(37)은 WSJ에 "직접 사용해 보니 만성 피로와 관절염에 큰 효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 6세 자녀에게 '쌀알 크기만큼의' CBD 오일을 먹인 결과 즉각적으로 구토가 멈췄다는 사례를 전하기도 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CBD는 미 식품의약국(FDA)에서 허가받은 발작 치료용 약 '에피디올렉스'의 주요 성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무턱대고 CBD를 신봉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요 클리닉의 통합 의약품 리서치 센터 관리자인 브렌트 바우어 박사는 포브스에 "CBD가 염증을 진정하고 수면 및 불안 장애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전 임상 실험 결과가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CBD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매우 제한적이다. CBD의 효과와 안전성에 대해 단정하기는 아직 매우 이르다"고 지적했다.

마요 클리닉의 내과 전문의 캐런 마우크 박사는 "현재까지 FDA가 인정한 CBD 기반 의약품은 에피디올렉스밖에 없다. 현재 CBD 제품이 활발하게 팔리고 있는데, 안전성을 맹신하는 것은 위험하다. 제품에 들어간 CBD의 함량과 구성 성분이 제각각이고, CBD 외에 어떤 혼합물이 들어갔는지 모르고, 때로는 제품에 붙은 상표가 정확하지 않은 것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불법과 합법 사이 CBD]

최근 미국에서 CBD 시장이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긴 하나, 아직까지도 CBD는 합법과 불법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연방 농업법으로 규제가 풀리긴 했지만, 모든 CBD가 합법은 아니다. 마리화나가 아닌 헴프에서 추출한 CBD 오일이라고 하더라도 환각 작용을 일으키는 물질인 THC의 농도가 0.3%를 넘어가면 불법이다. 또 대마초 자체가 불법인 아이다호, 캔자스, 사우스다코타 등 일부 주(州)에선 연방 농업법과 상관없이 CBD를 사용한 제품 판매가 금지돼 있다.

CBD 제품 판매를 금지하고 있지 않은 지역에서도 제품 종류에 따라 CBD를 규제하기도 한다. 뉴욕은 CBD가 함유된 화장품이나 건강 보조제 판매는 규제하지 않지만, CBD를 음식이나 음료에 섞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 뉴욕시 보건 당국은 "올해 7월 1일부터 CBD가 들어간 음식을 규제하고, 이를 위반한 업체는 벌금이나 경고 조치를 받는다"고 밝혔다.

스포츠계에서도 CBD 제품 사용에 대해선 잣대가 엇갈리는 상황이다. 작년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금지 약물 목록에서 CBD를 제외했다. 그러나 올해 4월 미국프로골프협회(PGA)는 선수들에게 CBD 제품 자제를 권고했다. PGA 투어 반도핑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앤디 레빈슨은 "20% 이상 CBD 제품에서 기준치 이상의 THC가 검출됐고, 이는 선수가 도핑 테스트에 걸릴 만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현재 국내에선 CBD 함유 제품이 불법이며, 해외에서 구입한 CBD 제품 역시 희소병 환자 치료 목적 등 특수한 일부 경우가 아닌 한 통관이 금지돼 있다. 식약처는 "현재 대마는 의료 목적으로도 제한돼 있기 때문에 전면적 활용이 안 된다"면서, "CBD 성분이 들어간 제품의 유통은 고려하고 있지 않고, 유통 및 사용이 금지돼 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CBD

대마초의 일종인 헴프〈사진〉라는 식물에 함유된 성분인 '캐나비다이올(Cannabidiol)'의 약자. 환각 등 부작용이 없으면서 통증과 스트레스, 염증 완화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작년 12월 마약 관련 규제에서 헴프를 제외하고, 헴프에서 추출한 CBD 오일 판매를 합법화했다. 이후 미국에서 CBD가 들어간 불면증 개선제, 화장품 등 다양한 제품이 출시돼 유통되고 있다.

[뉴욕=오윤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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