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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직장 괴롭힘에도 ‘청년공제’ 지키려 울며 버티는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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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청년노동자 장기근속 위한 ‘청년내일채움공제’

회사는 정부지원금만 타내려고 자진 퇴사 종용

노동자는 ‘청년공제’ 기간 채우려고 ‘갑질’ 버텨

“갑질로 퇴사하면 재가입 기회 부여해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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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

상사는 시시티브이(CCTV)로 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매일 업무일지 보고를 지시합니다. 상사는 저에게 매일 “너는 계속 월급을 축내는 사람으로 밖에 안 보인다” “내가 너였으면 벌써 회사를 나갔다”고 말하며 퇴사를 종용하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괴롭힘을 버티기가 힘들지만, 저는 매달 12만5000원씩 2년 동안 적립하면 1천600만원을 주는 청년내일채움공제 2년을 채우기 위해 참고 다니고 있는 중입니다.

사례 #2.

상사는 제가 입사 후 1년이 되는 시점에 불러 “요즘 하는 일이 없지 않느냐”, “사장님도 너를 마음에 안 들어 한다. 너의 미래를 생각해도 여기 다니는 게 좋지 않을 거다”라고 말하며 퇴직을 종용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퇴사를 하지 않자, 회사는 저 빼고 다른 동료들만 임금을 인상시켜줬습니다. 이후 상사의 괴롭힘은 심해졌습니다. 연차를 쓰면 “쓸 연차가 남아 있냐”며 은근히 압박을 하기도 했습니다. 회사는 정부지원금을 계속 받기 위해 저에게 권고사직이 아닌 자진사직을 압박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중소기업 청년 노동자의 임금을 지원하고 고용 안정을 위해 마련된 정부지원금이 악덕 기업주의 ‘갑질 수단’으로 쓰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원을 해고하면 정부지원금이 끊기는 규정 때문에 일부 사업주가 노동자들을 괴롭히며 자진 퇴사를 종용하고, 퇴사하면 청년내일채움공제 지원이 끊기길 두려워 하는 노동자는 회사의 갑질을 ‘울며 겨자먹기’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청년내일채움공제는 중·소기업 등에 취업한 청년의 장기근속을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2~3년 동안 10여만원을 매달 적립하면 기업과 정부의 지원금을 합해 목돈을 만들 수 있는 정부의 지원 제도다. 매달 일정 금액을 적립하면 원금의 5배가 넘는 목돈을 마련할 수 있어 특히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사회초년생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 청년내일채움공제, 고용장려금, 일자리 안정자금 등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기업의 경우 직원을 권고사직하는 등 인원을 감원할 경우 지원금이 중단되거나, 이미 지급된 지원금이 환수되기도 한다.

노무사·변호사 등이 꾸린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20일 공개한 <정부지원금 제도와 직장 내 괴롭힘 보고서>에서 정부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 일부 기업에선 고용 형태나 기간 등 노동조건을 위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를 보면, “회사가 청년내일채움공제 신청 서류에는 무기계약직 근로계약서를 첨부했으나 실제로는 계약직으로 고용했다”거나 “회사가 내일채움공제를 가입한 직원만 최저임금을 보장했다. 이마저도 최저임금을 초과하는 금액은 나중에 교육비 명목으로 돌려달라고 요구한다”는 사례 등이 직장갑질119를 통해 접수됐다.

이처럼 회사가 노동법을 위반하고 지속적인 갑질에 나서도, 청년노동자들은 정부 지원을 계속 받기 위해 문제 제기도 못하고 그저 버틸 수밖에 없다. 청년내일채움공제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자진 퇴사한 노동자의 경우 재취업을 해도 더이상 재가입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진해서 퇴사할 경우에는 갑질 피해자임에도 청년내일채움공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중 피해까지 받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피해를 막기 위해 직장갑질119는 “청년내일채움공제의 재가입 사유와 신청 횟수 제한을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정부는 △사업장의 휴‧폐업 △도산 △권고사직 △임금체불 △고용보험료 체납 등을 한 회사의 노동자에게만 재가입 기회를 1회로 한정하고 있어, 노동자는 갑질을 당해도 청년내일채움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 문제제기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직장갑질119는 정부의 관리‧감독도 강조했다. 직장갑질119는 “청년내일채움공제 등 지원금 제도 등을 통해 사업장이 노동자에게 부당대우를 일삼으면서 노동자를 묶어두는 무기로 이 제도를 악용하도록 내버려두면 안 된다”며 “사업장이 지원금 제도 취지에 반하는 노동관계법령 위반행위를 해서 고용노동부의 시정명령을 받은 전력이 있는 경우 향후 정부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일정기간 제외하는 등의 제재 규정을 신설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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