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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 "먹는 것은 대략 가지고 온 말린 민어 건포(乾脯) 따위로 버티고 있다. 비록 읍성(邑城) 밖이라 하더라도 도살을 금하여 고기를 먹는 사람이 없으니, 고기를 구해 먹고 싶어도 어찌할 방도가 없구나. 반드시 제주성(濟州城) 100리 밖에서 사온 뒤라야 비로소 고기 맛을 볼 수 있단다. 그러나 이 또한 어찌 번번이 할 수 있는 일이겠느냐?"
숭실대학교는 지난 10일 한국기독교박물관이 설립자인 고(故) 매산 김양선 교수가 수집한 추사 김정희의 서찰첩을 탈초번역 및 해제해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완당수찰(阮堂手札사진)'을 발간했다고 18일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서찰첩은 김정희가 제주도에 유배된 1840년 이후 힘든 유배 생활을 담아 뭍으로 보낸 편지로 구성돼 있다. 전체적으로 편지 20편, 시고(詩稿) 1편, 기타 3편 등 총 24편이 장첩돼 있다.
김정희는 북학의 종장이자 고증학 연구의 대가, 조선 금석학 연구의 개창자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서법(書法) 연구에 몰두해 추사체를 창시하기도 했다.
완당수찰에서 '완당'은 김정희의 별호이며, '수찰'은 직접 쓴 편지라는 의미다. 여기에 수록된 20편이 편지는 작성일자, 수신자가 명확치 않으나 대부분 업무지시 내용이어서 김정희가 그의 집안일을 도와주던 겸인(심부름꾼)에게 보낸 편지임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알려진 김정희의 편지는 가족 또는 친구에게 보낸 것이 대부분인데, 겸인에게 보낸 것은 처음 발견됐다.
본 서찰첩은 김정희의 초기 제주 유배 생활의 내밀한 이야기가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김정희의 다른 서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단했던 생활의 진면목이 드러나 있는데, 유배지에서 반대파들이 보낸 수령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도 해 인사 청탁으로 자신의 주변에 가까운 인물을 두기 위해 노력했던 내용이 담겨 있다. 아전과 서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김정희의 유배 생활을 도와줬던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고 박물관 측은 설명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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