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생활하다 동생 뒷바라지 위해 변호사길
범죄자 만나고 구치소 방문에 회의 느낄때쯤
버스공제조합 사고 맡아 해결하고 '승승장구'
변호인 능력따라 판결 달라지는 불합리함 발견
힘없는 개인들 편에 서서 일하기로 마음먹어
각종 교통사고 담은 영상·사례 등 확보되면
안전운전 제고 교육용 자료로 제작·배포 계획
아이들이 '블랙박스 아저씨' 부를때 기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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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히는 자동차의 등장으로 인류는 상상할 수 없었던 편리함을 선물로 받았다. 그러나 문명의 이기는 교통사고라는 멍에도 동시에 안겨줬다. 서울의 강변북로 같은 간선도로에 걸린 전광판은 ‘어제의 교통사고’라는 제목을 달고 매일 사망자과 부상자를 숫자로 알려준다.
가끔 대형 교통사고라도 발생하면 수십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는다. 자율주행을 비롯해 자동차의 안전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되고 음주운전 처벌과 같은 교통법규가 연일 강화되지만 교통사고는 줄지 않고 이를 둘러싼 법정 다툼도 끊이지 않는다.
“자! 여러분 다시 한번 영상 보실게요. 지금 신호등이 노란불로 바뀌었죠. 근데 차가 이동을 했나요. 아니죠? 이게 중요한 겁니다. 이래서 블박(블랙박스) 차량과 상대 차량의 과실 비율은 0대 100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거죠.”
국어사전에 나오는 달인은 남달리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널리 이치에 통달한 사람을 일컫는다. 때로 고수라 불리기도 하고 장인이라는 호칭도 따라붙는다. 영어로는 베테랑이라는 말도 있다.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인 한문철(59) 스스로닷컴 대표변호사는 그런 면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교통사고 분석의 달인’이다.
19일 서울 서초동의 법무법인 스스로닷컴 사무실에서 만난 한 변호사는 시청자가 제보한 교통사고 영상을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영상을 틀자마자 한 변호사는 혼잣말로 ‘상대 차량이 100% 잘못했네’라고 웅얼거렸다. 마치 현금을 넣으면 바로 음료수가 튀어 나오는 자동판매기 같았다.
“교통사고 유형은 굉장히 다양해요. 그런데 저는 오래 하다 보니까 자연스레 머리에 각종 유형이 저장이 돼서 바로 판단이 되지요. 물론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어요. 교통사고에는 워낙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고 도로교통법도 의외로 깐깐하거든요. 요즘 길거리에서 아이들이 ‘블랙박스 아저씨’라고 불러주면 제일 기분이 좋습니다.”
한 변호사의 유년 시절은 순탄지 않았다. 경기 고양시에서 태어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쫓기듯이 경남 마산시로 내려갔다. 한때는 나름 유복하게 자랐지만 동생 4명을 둔 한 변호사에게 어쩔 수 없이 가장의 임무가 주어졌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면서 참 어려웠죠. 어서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아야 했기에 전공을 살려 사법시험을 준비했고 2년 정도 검사로 근무했어요. 근데 동생들 학업을 뒷바라지 하려니까 변호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검찰을 떠난 변호사는 형사사건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형사사건은 수임료도 많고 재판도 민사사건에 비해 빨리 종결되기에 적성에 꼭 맞았다. 하지만 매일 같이 범죄자를 만나야 하고 각종 잔인한 사건의 내막을 어쩔 수 없이 알아야 한다는 게 고통으로 다가왔다. 피의자의 형량을 줄이는 게 훌륭한 변호사의 능력이라지만 왠지 우리 사회에 빚을 지고 있다는 양심의 가책도 덩달아 따라왔다.
“형사사건은 일단 금액이 커요. 그리고 유무죄 여부가 확실하니까 사건도 빨리 끝나고 해서 변호사 입장에서는 제일 좋은 분야죠. 근데 매번 피고인을 접견하려 구치소를 가는데 구치소 내부의 소독약 냄새도 너무 싫고 인생 자체가 우울해지더라고요.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마침 전국버스공제조합에서 사건 의뢰가 들어왔죠.”
전국버스공제조합은 버스가 교통사고를 냈을 때 버스회사 입장에서 보험료를 지급해주는 단체다. 당시는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라는 개념조차 없었기에 오롯이 판사의 판단에만 의존해야 했다. 판사 역시 교통사고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판결이 오락가락하는 경우도 많았다.
“사법시험 합격 후 군법무관으로 근무할 때 ‘교통사고 법률지식’이라는 책을 하나 냈어요. 그 전에도 비슷한 책이 있었는데 그건 일본 책을 그대로 번역한 거라 제가 쓴 게 사실상 대한민국 최초의 교통사고 전문 서적으로 보면 됩니다. 책 쓰느라 여러 관련 법규를 공부했는데 교통사고는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정도로 어려운 분야였어요.”
버스공제조합의 변호를 맡은 한 변호사는 승승장구를 이어갔다. 이론적 토대에 실무 경험까지 더해지자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가 자문을 구해올 정도였다. ‘한문철’이라는 이름만 보고 상대방 보험사가 소송을 포기하는 사례도 잇따랐다.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라는 별명은 이 무렵 생겼다.
“과거 교통사고 소송은 변호사에게 사건을 소개시켜 주고 수수료를 받는 브로커들의 영역이었어요. 변호사가 일일이 사건을 파악하는 경우가 없었고 형식적으로 재판에 출석했죠. 근데 의과대학생처럼 고관절 골절에 대해 공부하고 판사에게 설명하는 변호사가 나오니 판사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거죠. 5년 동안 1,000건 정도의 사건을 맡으면서 자연스레 교통사고 소송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확보했어요.”
버스공제조합의 편에서 막강한 승소율을 자랑했던 한 변호사에게 의문이 찾아온 것은 이 무렵이다. 교통사고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데 어느 한쪽이 변호사의 능력으로 불리한 판결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낼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약자인 개인을 상대로 변호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보험사들이 알아서 보상약관을 바꾸는 등 적잖은 변화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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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변호사는 요즘 교통사고 소송을 거의 맡지 않는다. TV방송 출연과 유튜브 활동으로 바쁜 탓도 있지만 일반인에게 교통사고를 상담해주는 것이 주된 일과다. 교통사고로 인해 생업에 지장을 받거나 억울한 피해를 받는 사람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반면 과실이 명백하다고 판단되는 사고는 “애초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선택”이라며 호되게 꾸짖는다.
그는 “지금까지 확보한 교통사고 사례가 6,000여건인데 앞으로 1만건 정도 모이면 사실상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교통사고를 담은 빅데이터가 생기는 셈”며 “교통사고 감소와 안전운전 의식 제고를 위해 블랙박스 영상을 교육용 자료로 가공해 무료로 배포하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사진=성형주기자
He is
△1961년 경기 고양
△1985년 서울대 법학과 졸업, 제27회 사법시험 합격
△1992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2003년 법무법인 스스로닷컴 대표변호사
△2012년 법제처 교통분야 국민법제관
△2013년 도로교통공단 정보공개심의회 위원
△2018년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초빙교수
△2019년 경찰청 법률자문단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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