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감정의 보완 통해 법적 정의가 공감으로 확장하는 과정 탐구
정치적 감정-정의를 위해 왜 사랑이 중요한가
마사 누스바움 지음, 박용준 옮김/글항아리·3만2000원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시대마다 많은 학자들이 적절한 답을 제시하던 오랜 지적 전통이 있었지만, 대개 ‘각자에게 그의 몫을’(Suum cuique)이라는 관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세기 후반인 1971년 정치철학자 존 롤스가 자신의 <정의론>에서 정치적 자유주의를 배경으로 하는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표방함으로써 현대적인 정의론이 정립되었다. 롤스의 정의론은 워낙 탁월하여 이후 정치철학의 지형을 바꾸는 계기가 되지만, 그에 상응하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예컨대 로버트 노직 같은 자유지상주의자에게는 좌파적인 재분배 정책이라고 비난받고 마이클 샌델, 앨러스데어 매킨타이어, 찰스 테일러, 마이클 월저 같은 공동체주의자들로부터는 개인주의적인 정치철학이라고 비판받는다.
초기의 원론적인 비판과는 달리, 최근에는 롤스의 정의론에 대한 다른 관점의 섬세한 비판들이 제기되고 있다. 롤스가 이른바 ‘차등원칙’을 통해 개인에게 인센티브를 허용함으로써 또 다른 불평등을 낳게 된다는 비판을 가하고(제럴드 앨런 코헨), 롤스가 제도의 기획에만 초점을 맞춘다고 불평한다(아마르티아 센). 한편 마사 누스바움은 센과 의견을 같이하면서도 롤스의 정의론이 간과했을 법한 ‘감정’의 문제를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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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스바움의 <정치적 감정>은 ‘공적 감정’을 통해 시민들의 좋은 감정들을 형성하고 구현하는 정의의 기획으로서 자신의 정의론을 집대성한 책이다. 그의 논지는 명확하다. “공정한 사회가 안정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은 이에 대한 정당화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기에 감정에 대한 질문은 정의의 원칙들을 정당화하는 논의들과 통합적으로 다루어져야” 함을 전제로, 롤스가 “자신의 도식적 설명 속에서 상징, 기억, 시, 내러티브, 음악 등과 같은 감정에 대한 간접적인 호소가 공정한 제도에 대한 열망과 관련하여 근본적인 동기부여를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누스바움은 고전학자이자 법학자인 자신의 장점을 탁월하게 활용한다. 먼저 고전학자로서 누스바움은 동서양의 다양한 정치사상과 문학의 고전을 재해석함으로써 시민적 사랑이라는 공적 감정의 중요성을 드러낸다. 누스바움은 정치적 자유주의가 사랑, 연민, 공감과 같은 좋은 감정을 통해서 유지될 수 있고, 혐오, 질투, 수치심 등과 같은 나쁜 감정들을 통해서 저해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감정의 기능에 대한 단서를 <피가로의 결혼>과 같은 모차르트의 오페라에서 찾아낸다. 누스바움은 이 작품이 여성들(수산나와 로시나)의 수평적인 관계에 기반한 상호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랑과 우정을 보여준다고 재해석한다. 즉 “좀더 온화하고, 호혜적이면서, 여성적인 새로운 공적 사랑의 형태를 구현”한 것이다. 잘 알려진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죄수들이 교도소 내 확성기를 통해 이 듀엣곡을 듣고 “말로 표현할 수 없고 가슴 아프도록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감동받는 장면이 나온다. 누스바움은 두 여인의 듀엣곡이 음악적 협력을 통해서 상호 간의 존중과 더 깊은 호혜성을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엔 ‘인간 평등’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국가들의 구성원 모두를 위해, ‘평등한 정치적·시민적 자유’라는 아이디어는 핵심적”이기 때문에 평등을 향한 이 같은 책무는 ‘적법한 절차에 따른 자유의 권리’와 ‘법률에 의한 평등한 보호’에 대한 넓은 관심으로 확장된다고 누스바움은 진단한다. 법학자인 누스바움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평등을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법과 제도에서 찾는다(아마도 이는 누스바움이 다른 페미니스트들과 크게 차별화되는 지점일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중국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인해 큰 감정적 동요를 느끼다가도 금세 자기 새끼 손가락에 있는 고통으로 관심을 전환한다. 감정적 기반에만 뿌리를 두고 야심차게 시작하는 사회적 재분배의 기획은 실패할 운명에 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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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스바움은 특정한 곤경에 대해 예민한 공감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동료 시민들에게 감정을 불러일으킬 방법을 모색해야 할 뿐만 아니라, 대의를 추구하는 데 있어 안정성을 담보하는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시민들의 공적 감정은 법과 제도의 흠결을 보충하고 개선하는 데 기여한다. 이를테면 가난한 이들에게 연민을 느낀다면 자선사업을 하나의 방편으로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러한 마음의 기운을 공정한 조세제도나 일련의 복지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것이 훨씬 훌륭한 일이다. 우선 법과 제도가 합리적이고 타당하다면, 감정은 이를 유지하고 지탱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러한 법과 제도를 개선하려는 동기를 부여한다. 요컨대 누스바움에게 “법은 개인적 원한의 경험을 갖는 통찰을 구현하는데, 이는 성찰을 통해 정제된 것이자 모두를 향한 공감에 의해 확장된 형태를 갖는” 것이다.
정의에 대한 이론은, 특히 인간 해방에 대한 기획과 함께, 여전히 진행 중이고 추구해야 할 목표이다. 롤스가 정립한 정의론의 토양 위에서 인간에 대한 합당한 이해라는 씨앗이 비로소 뿌려졌다면, 누스바움에 와서 정의론은 인간의 감정을 본격 조망하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에 기반한 정의론을 구축하였다고 할 것이다. 비로소 우리는 다음과 같이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정의를 위해 왜 사랑이 중요한가.”
김대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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