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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 (토)

"펠로시는 3류" "트럼프는 멘붕"… 백악관 난장판 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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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드 사태 논의하기 위해 트럼프와 의회 지도부 만나 시종일관 막말·조롱 '감정싸움'

하원선 철군 비판 결의안 통과

미국의 시리아 철군으로 촉발된 터키의 쿠르드족 공격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 여야 의회 지도부를 백악관으로 초청했으나 이날 회동은 서로 "3류 정치인" "멘붕"과 같은 막말과 조롱을 퍼붓다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끝났다. 미국의 동맹군으로 이슬람국가(IS)와 싸워 1만1000여 명이 전사한 쿠르드족이 미군 철군으로 학살 위기에 몰렸지만 미국 정치권은 분열만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

낸시 펠로시(왼쪽 서 있는 사람) 하원의장이 16일(현지 시각) 미 백악관 캐비닛룸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여야 의회 지도부 간 회동에서 맞은편에 앉은 트럼프 대통령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발언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리며 '불안한 낸시의 혼란한 멘털 붕괴!'라고 적었다. 펠로시는 트럼프의 이 같은 공격에 해당 사진을 아예 자신의 트위터 배경사진으로 설정하는 방식으로 응수했다. /트럼프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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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 시각) 백악관 캐비닛룸에서 펠로시 의장 등 의회 지도부를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자신에 대한 하원의 탄핵조사가 시작된 뒤 처음으로 민주당 지도부와 대면한 자리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을 대면하자마자 "당신(민주당)들이 이 회의를 원한다고 들었다. 나는 이걸 원하지 않지만 하는 것"이라며 마치 야당 의원들에게 '특혜'를 베푸는 듯 말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백악관에서 먼저 시리아 정책에 대해 브리핑하겠다고 했다"고 응수했다.

민주당 1인자 펠로시 의장은 백악관으로 오기 직전 하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철군 결정을 비판하는 결의안이 찬성 354표, 반대 60표의 압도적 차이로 통과됐다고 알려주며 트럼프를 자극했다. 이어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우리(트럼프와 자신)는 IS와 같은 테러리스트들의 문제점을 잘 아는 (9·11을 겪은) 뉴욕 출신 아닌가"라고 일단 달랜 뒤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의 NBC 인터뷰 발언을 그대로 읽기 시작했다. 슈머 대표가 "IS의 위험성이 훨씬 커졌고 고도화됐다. 시리아 철군으로 IS가 재기할 수 있다"고 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말을 자르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매티스는 세계에서 가장 과대평가된 장군"이라며 "왜 그런지 아나? 그는 충분히 터프하지도 않고 IS를 잡는 데 2년이 걸릴 것이라고 했는데 내가 한 달 만에 잡았다"고 했다. 2003년 이라크전에서 800㎞ 장거리 원정을 단 17일 만에 돌파해 미 해병대의 살아 있는 전설이 된 매티스 전 장관보다 자신이 더 군사적으로 뛰어나다는 것이다.

흥분한 트럼프에게 펠로시가 결정타를 날렸다. 미군 철수로 중동에서 러시아만 득을 봤다며 "당신과 관련된 모든 길은 푸틴(러시아 대통령)으로 통한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격분해 "내가 당신보다 더 IS를 싫어한다"고 하자 펠로시는 "당신이 어떻게 아느냐"고 응수했다. 트럼프는 "당신은 그냥 정치인이니까"라고 하자, 펠로시는 "당신도 가끔은 좀 정치인이었으면 좋겠다"고 받아쳤다. 정치를 전혀 모르는 인물로 취급한 것이다. 약이 오른 트럼프는 "당신은 정치인이 아니라 3류 정치인"이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이에 스테니 호이어 민주당 하원 원내총무가 "굉장히 모욕적"이라며 펠로시 등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러자 트럼프는 "잘 가라. 선거 때 보자"고 비꼬았다.

캐비닛룸에서 나온 펠로시 의장은 기자들에게 "우리가 대통령 측에서 목격한 것은 멘털 붕괴(meltdown)"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자제력을 잃는 모습을 보였다고 비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3류(third-rate)'라는 표현을 '3등급(third-grade)'이라고 잘못 말했다면서 모욕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고 조롱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펠로시가 회의장에서 일어나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고 "불안한 낸시의 혼란한 멘털 붕괴!"라고 적었다.

이날 회동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터키가 쿠르드족을 공격하던 지난 9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냈다고 밝혔는데, 공개된 친서를 본 미 언론들은 "이게 진짜일까. 트럼프가 초등학교 3학년 작문 수준의 편지를 에르도안에게 보냈다"고 비꼬았다. 모두 12줄인 편지는 "좋은 딜(deal)을 끌어내보자!"로 시작한다. 트럼프는 한편으론 에르도안을 달래면서 한편으론 위협했다. "네가 올바르고 인도적인 방식으로 일을 끝내면 역사는 널 좋게 볼 것이고, 좋은 일이 생기지 않으면 역사는 널 영원히 악마로 볼 거야"라고 했다. 또 "넌 수천명을 학살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잖아"라고 해, 시리아 철군에 따른 터키의 쿠르드족 공격이 가져올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나도 터키 경제를 파괴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친서는 "터프 가이 짓 하지마. 바보 짓 하지 마! 이따 전화할게(I will call you later)"로 끝난다. BBC는 터키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에르도안이 트럼프의 편지를 읽고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고 보도했다.

[워싱턴=조의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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