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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일사일언] 완벽하지 않아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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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문혜연 2019 신춘문예 시 당선자


최근에 디지털 피아노를 샀다. 사람들이 피아노를 잘 치냐고 물어서 어떻게 대답할지 난감했다. 잘 친다고 말하고는 싶은데 그럴 만한 실력은 아닌 것 같고. 결국, 잘하진 못해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처음엔 간단한 연습곡들을 치다가, 쉬운 곡이어도 클래식 한 곡은 제대로 연주할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적당한 수준의 연습곡을 고르고, 악보를 외울 때까지 100번은 넘게 연주했다. 곡을 외우고 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틀리지 않고 쳐보자는 목표를 세웠다.

그런데 연습을 할수록 연주는 딱딱하기만 했고, 실수가 잦았다. 자꾸 실수하는 게 싫어서 잠깐 피아노에 흥미를 잃었다. 완벽해지고 싶었는데 오히려 멀어지다니. 문제가 뭘까 하고 스스로 피아노 치는 걸 영상으로 찍어봤다. 그리고 알았다. 연주하다 실수를 하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이 마음이 문제라는 걸. 틀려도 괜찮은데, 듣는 사람은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나뿐인데, 나는 왜 그렇게 완벽해지고 싶었던 걸까.

종종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면 되돌아오는 질문들이 있다. 요리를 좋아한다고 하면 요리를 잘하는지, 커피를 좋아한다고 하면 커피에 대해 잘 아는지. 물론 별 뜻 없이 물어본다는 걸 안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질문들이 압박과 검열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서툴더라도 좋아하는 곡을 더듬더듬 쳐가는 즐거움으로 시작해, 한 곡을 완벽하게 연주하겠다는 목표에 갇혀 점점 즐거움을 잃어가는 일처럼.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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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을 그냥 좋아하고, 못하면 못하는 채로 좋아하기. 그 행위의 결과가 아닌 행위 자체를 즐기기.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은 갖되 너무 부담 가지진 말기. 당연하면서도 생각보다 어려운 마음가짐이다. 즐거움을 즐거움으로만 남기는 일도 연습해야 한다는 게 조금 슬프지만, 더 순수하게 좋아하기 위해서 이번엔 기꺼이 연습해보려 한다. 있지도 않은 청중을 위한 곡이 아니라 오직 내 두 귀만을 위한 곡들을.





[문혜연 2019 신춘문예 시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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