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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누가 커쇼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오늘과 내일/윤승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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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무대서 거듭 실패한 간판 스타… “고개 숙이지 않겠다”는 의지로 승화

동아일보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실력이 엇비슷한 상대에게 패할 땐 이유가 둘 중 하나다. 승리를 과신하거나, 패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31년 만의 우승에 도전했다가 가을 무대 첫 관문(디비전 시리즈)에서 탈락한 미국프로야구 LA 다저스는 두 악재가 겹쳤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상대를 쉽게 생각했고, 에이스 클레이턴 커쇼는 승부를 너무 두려워했다. 그래서 졌다.

정규시즌과 달리 포스트시즌은 내일이 없는 벼랑 끝 승부다. 로버츠 감독은 내일을 봤다. 주무기인 류현진을 워싱턴전 1, 2차전이 아닌 3차전 선발로 내세웠다. 다음 단계인 챔피언십시리즈(NLCS) 1차전 선발로 내세우기 위해서였다. 정규시즌 106승(구단 최다승)을 거둔 자신감 때문인지, 막차 타고 가을 무대에 입성한 워싱턴을 쉽게 봤던 것이다. 워싱턴은 다윗처럼 내일이 없었다. 에이스인 맥스 셔저를 2차전 구원투수로 투입하는 강수를 마다하지 않았다. 골리앗 다저스는 기선 제압에 실패하고 무너졌다. 로버츠는 방심으로 큰 그림을 잘못 그렸다.

패배의 마침표는 커쇼가 찍었다. 5차전에 구원 등판한 커쇼는 홈런 2개를 내리 허용하며, 워싱턴에 승리를 헌납했다. 커쇼는 사이영상을 세 번이나 받은 최고의 투수지만, 가을 무대에선 거듭 실패했다. 가을 무대가 그의 아킬레스건이었다.

그래서인지 5차전 구원 등판을 앞둔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불펜 피칭을 하면서도 표정이 무척 어두웠다. 패배가 미리 두려웠던 것이다. 투수가 두려움을 느끼면,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러면 그 공은 날카로움을 잃고, 의도한 궤도도 벗어난다. 커쇼의 공이 그랬다. ‘국보급 투수’ 선동열 감독이 이런 말을 했다. “패전 처리 투수라도 온전히 자기 공을 던지면 홈런왕도 삼진으로 돌려 세운다”고. 투수는 타자가 아닌 자기 마음과 싸움을 하는 존재다.

커쇼는 경기가 끝난 뒤 더그아웃에 홀로 앉아 있었다. 실패에 따른 엄청난 비난과 조롱,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 그는 또 다른 두려움에 직면해 있었다. 앞선 마운드의 모습처럼, 그가 그 두려움에도 붙들려 주저앉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커쇼는 야구장을 떠나지 않았고, 기자들 앞에 섰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던 것(포스트시즌 징크스)이 이제 진실이 됐다. 정말 참담한 심정이고, 지금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고통을 애써 억누르며 그는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숙이지는 않겠다. 도망가지 않겠다. 계속 싸우고, 경쟁할 것이다.”

인생의 마운드에서 던진 그의 메시지는 날카로웠고, 정확한 지점을 찔렀다. 커쇼의 그 한마디는, 5차전 승전보보다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사실 커쇼가 월드시리즈 MVP를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야구가 단순한 공놀이가 아닌 것은, 그것이 우리의 인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메이저리그 가을잔치에는 8개 팀이 나섰다. 우승팀을 뺀 7개 팀은 패자가 된다. 메이저리그 전체로 보면 패배하는 팀은 29개다. 우리 삶도 성공을 지향하지만, 그것은 무수한 실패 속에서 이뤄진다. 실패에 고개 숙이지 않겠다는 그 말,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불같은 강속구를 던졌던 커쇼는 구위가 확연히 떨어지고 있다. 나이도 들고, 부상도 있다. 상대 타자도 더 악착같이 물고 늘어질 것이다. 과거처럼 포효하는 모습을 쉽게 보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커쇼는 나아간다고 한다. 류현진을 보지 않았는가. 어깨 수술로 강속구를 잃었지만, 제구력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찾아내 메이저리그를 평정했다. 실패를 극복하려는 의지와 상황에 대한 새로운 해석, 그것이 있기에 희망은 유효하다. 내년 가을 무대에는 커쇼가 어떤 모습으로 설까. 멋지게 돌아올 것이다. 그러면 내년 우리의 모습은 어떠할까.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tou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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