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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매경데스크] 또 한번 노벨상 시즌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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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2000년대 초반부터 매년 10월 첫째 주 목요일이면 고은 시인의 자택 앞으로 기자들이 몰려가곤 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 때문이었다. 이 오랜 풍경은 2017년 이후론 사라졌다.

올해 노벨문학상은 폴란드의 올가 토카르추크와 오스트리아의 페터 한트케에게 돌아갔다.

지난해 미투 파문으로 수상자를 선정하지 못한 탓에 올해 두 명의 수상자가 나오면서 출판가는 2배의 노벨상 특수를 기대하고 있다. 대형 서점에는 '노벨문학상 특집코너'가 마련됐고, 한트케의 희곡 '관객모독'과 장편 '소망 없는 불행'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는 증쇄에 돌입했다. 토카르추크의 '방랑자들'은 출간을 앞당겼다.

한트케가 코소보 내전 당시 '인종청소'를 옹호했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면서 노벨상을 둘러싼 잡음도 커지고 있다. 노벨상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분위기를 염려하는 목소리도 커졌고, 노벨상은 국가 대항전이 아니라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벨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부러움이 묻어 있음을 숨길 수 없다. 이런저런 우려에도 한국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 문학 위상을 분명 한 단계 끌어올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좋은 작품이 세계에 소개되지 못하고 국내에만 머문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이미 K팝과 K패션, K푸드 등 한국 문화가 세계에 알려진 만큼 이제 문학을 소개하기 위한 토양도 마련됐다.

한국 문학작품이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려면 번역이 필수다. 노벨문학상 후보가 되려면 5개 국어 이상으로 번역된 작품이 있어야 하고, 번역 언어에는 스웨덴어가 포함돼야 한다.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해외에서 출판된 한국 문학 작품은 2001년 이후 1290건에 달한다. 번역 언어도 39개나 된다. 김영하, 한강, 신경숙 등 미국 영국에서 일정한 독자층을 확보한 작가도 있다.

하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이 상을 받기까지 해외에서 100건 이상 번역되는 것을 감안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지원 사업을 늘리고 예산을 나눠주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인공지능(AI) 번역 등의 등장으로 '인간 번역가'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지원 사업에서 탈락하면 생계조차 막막한 번역가들이 많은 상황에서 노벨문학상을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번역 기반이 무너지면 한국 문학은 한반도 내에 갇힐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장애물은 한국인 스스로가 한국 문학에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인 독서량이 주요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라는 조사 결과는 여러 차례 나왔다. 독일 통계분석업체 스태티스타의 2017년 통계에 따르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책을 읽은 사람의 비율이 한국은 13%로 중국(36%), 영국(32%), 미국(30%), 일본(20%)에 비해 현저히 낮다.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아져야 책 생산 원가가 낮아지고, 그래야 더 나은 작가를 발굴할 수 있다. 국내에서 잘 팔리는 책이라야 해외 진출도 고려해볼 수 있다.

현재 한국 작가 중 노벨상 후보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평가되는 한강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소설이 잘 번역돼 해외로 진출하자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문학은 경쟁의 도구가 아니다. 장 폴 사르트르는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하면서 "문학적 우수성을 놓고 등급을 매기는 것은 부르주아 사회의 습성"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노벨상 '한 방'에 모든 것을 기대려 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노벨문학상이 전 세계에서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한 작가에게 주어지는 영예라는 점에서, 한국 문학 세계화를 위한 가치 있는 도전은 계속돼야 한다.

또다시 노벨상의 계절이 지나가고 있다.

[이은아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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