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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법원 결정, 행정처 지시로 취소…현직 법관 "대법원장에 보고"(종합2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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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사법부 '재판취소 압력' 의혹 놓고 현직 판사 법정 증언

"통진당 소송 관련 문건 읽고 간담 서늘"…양승태 측 "사후 보고일 뿐" 반박

재판부 "검찰도 9시 이후 수사 안 한다는데…" 오후 10시 넘자 신문 중단

연합뉴스

법정 향하는 양승태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19.9.27 superdoo82@yna.co.kr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김은경 기자 =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정처가 일선 법원의 결정을 취소하도록 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현직 판사의 법정 증언이 나왔다. 일선 법원의 결정이 부적절하게 취소되는 과정을 양 전 대법원장이 보고받았다는 취지다.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심의관 출신 문모 판사는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속행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이렇게 증언했다.

문 판사는 행정처에 근무하던 2015년 서울남부지법이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결정을 내리자 관행에 따라 이를 상부에 보고했다고 했다.

한정위헌은 법률을 특정한 방향으로 법원이 해석하는 경우에 한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의 한 형태다. 양 전 대법원장 등 당시 사법부 고위 구성원들은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이 상대적으로 대법원의 위상을 떨어뜨린다며 우려했다.

이런 우려를 사는 한정위헌 사건을 헌재가 심리해 달라는 취지로 일선 법원에서 위헌법률심판 제청 결정을 내리는 것을 당시 법원행정처는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이런 사정 속에서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남부지법의 결정은 법원행정처에 보고됐다. 검찰은 이 결정과 관련한 문 판사의 보고를 받은 법원행정처가 남부지법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결정을 취소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파악했다.

문 판사는 이날 법정에서 남부지법의 결정이 어디까지 보고됐느냐는 질문에 "제가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대법원장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안다"며 "관행적으로 법원행정처장이 결정할 사안은 아니라고 이해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너무 짧은 시간에 일이 커져 마음이 안 좋았다"면서도 "직권 취소는 법률적으로 불가능하고, 윤리적으로도 일선 재판에 개입하는 것이라 안 된다"고 말했다. 윤리적 문제를 지적할 때에는 다소 말을 더듬기도 했다.

다만 문 판사는 해당 재판부의 위헌제청 결정을 두고는 "법률의 위헌성이 문제가 된 사건인데 재판부가 착오로 한정위헌 취지로 결정했다"며 "보고할 것인지 말지 고민을 했지만, 실제로 한정위헌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에(보고했다)"고 말했다.

옛 통합진보당이 해산된 뒤 소속 의원들이 낸 소송에 법원행정처가 개입한 의혹과 관련해서도 문 판사는 "당시 생성된 문건을 읽어보고 기술된 내용이 지나친 것이 있어 간담이 서늘할 때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 소송을 맡은 1심 재판부가 법원행정처의 의중과 달리 사건을 각하하자,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이 크게 질책했다는 사실도 전해 들었다고 문 판사는 밝혔다.

또 다른 관련 사건이 진행되던 전주지법에서 법원행정처로부터 전달받은 문건이 언론에 유출되는 사건이 벌어지자 박 전 처장 등이 크게 당황해 양 전 대법원장에게 달려간 정황도 그는 묘사했다.

그는 "상황을 보고받은 처장이 놀라서 급히 가는 장면을 목격했다"며 "부속실 여직원은 11층에 전화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11층은 대법원장 집무실이 있는 곳이다.

이후 법원행정처는 이 문건이 심의관 개인 의견이었던 것으로 방침을 정했고, 문건 작성과 유출 경위 등을 해명하는 자료를 만들었다.

그는 이 자료의 초안을 만들 때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행정처장, 차장, 정책실장 등은 모두 출타 중이라 내부에 보고되지 않았다'는 문구를 직접 알려줬다며 "당시 차장과 실장 모두 청사에 계셨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다"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증인의 진술대로면 하루 사이에 위헌제청심판 직권취소 결정이 모두 이뤄진 것"이라며 "사흘 뒤 증인이 작성한 보고서는 결국 양 전 대법원장에게 사후 보고한 것일 뿐 정책 결정을 받기 위한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직권취소를 하는 쪽으로 추진하라는 대법원장의 결심이 있었다고 들은 바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문 판사는 "위에서 취소하고 다시 결정하는 것으로 결정났다고만 들었다"며 "주체에 대해서는 말씀들은 기억이 없다"고 답했다.

이 밖에도 양 전 대법원장 측은 문건 유출 사건 당시 문 판사가 묘사한 상황은 여러 정황을 종합한 것일 뿐, 해당 내용을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직접 보고했다고 직접적으로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취지로 질문했다.

이날 재판부는 문 판사에 대한 증인신문이 오후 10시를 넘겨서까지 이어지자 재판을 중단하고 공동 피고인인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 측의 신문은 11월에 이어 진행하기로 했다.

재판부가 이처럼 증인신문을 밤늦게까지 하는 대신 여러 차례에 나눠 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다만 이날 재판부는 "검찰도 이제는 9시 이후로 수사를 하지 않겠다고 개혁했다고 하는데, 저희도 참고는 해야 할 것 같다"며 "한밤중까지 재판하는 것이 소송관계인은 물론이고 판사와 직원들에게 너무 무리가 된다"고 중단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sncwoo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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