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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장쩌민 전 중 총서기 사망설 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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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으로 볼 때 가능성도 농후

아시아투데이 홍순도 베이징 특파원 = 지난 1989년 6월의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대권을 거머쥐었던 중국의 장쩌민(江澤民) 전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사망설이 파다하게 번지고 있다. 93세의 고령이라는 사실에 비춰보면 소문이 사실일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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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8년 중국을 방문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을 때의 장쩌민 전 총서기 겸 주석./제공=신화(新華)통신.



중국 권부(權府) 정보에 밝은 베이징 소식통의 15일 전언에 따르면 그는 2002년 후임인 후진타오(胡錦濤·77) 전 총서기 겸 주석에게 최고 권력을 넘겨주지까지 약 13년 동안이나 집권했다. 초창기에는 막후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의 기세에 눌려 지냈으나 97년 덩의 사망 이후에는 나름대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친인척들이 상당한 축재를 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의 손자 장즈청(江志成·33)의 중국 최고의 사모펀드로 알려진 보위(博裕)캐피털의 실질적인 오너로 알려진 사실만 봐도 좋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베이징대학의 모 교수는 “장즈청이 굴리는 돈의 규모는 대략 5000억 달러 전후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장 전 총서기 겸 주석 친인척의 부정축재 규모는 그 이상에 이른다고 봐야 한다”면서 축재 소문이 사실에 가깝지 않겠느냐고 주장했다.

사실 그의 사망설이나 건강 악화설은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덩샤오핑의 케이스처럼 수백 번은 아니나 몇 차례 외신들에도 사망설이 보도되고는 했다. 하지만 지난 10월 1일의 국경절 70주년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미뤄볼 때 사망설은 다소 과장됐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사망설이 파다한 것은 당시 모습이 건강한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보인다.

숙부이자 양부인 공산 혁명 열사 장상칭(江上淸)의 후광을 등에 업었던 이른바 훙얼다이(紅二代)인 그는 1989년 권력에 정점에 오르기 전에는 상하이(上海) 서기로 일한 바 있다. 톈안먼 사태가 발생할 때만 해도 최고 권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자오쯔양(趙紫陽) 전 총서기가 톈안먼 사태로 실각하자 급부상, 대권을 거머쥘 수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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