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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이스라엘 모델이 답. 21세기는 대학이 기술혁신의 뿌리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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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장재수 고려대 기술지주회사 대표가 14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이공계캠퍼스내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 1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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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출신 장재수 고려대 기술지주 대표



법ㆍ상대 등 문과(文科) 중심이던 전통 사학 고려대가 미국 실리콘밸리 창업의 산실 스탠퍼드대의 ‘한국판’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3월 고려대 개교(1905년) 이래 처음으로 이공대 출신 정진택(기계공학 전공) 총장이 선임된데 이어, 지난 1일에는 그간 교수가 겸임으로 맡아오던 대학 기술지주회사의 대표에 대기업 고위임원이 영입됐다. 올해 초까지 삼성그룹 미래기술육성센터장 겸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사무국장을 맡았던 장재수(57) 전무가 그 주인공이다. 기술지주회사란, 대학 내 교수ㆍ학생들의 연구ㆍ개발(R&D) 성과를 창업이나 투자로 연결하기 위한 목적의 회사를 말한다. 창업 공간을 만들어주고 키워내는 인큐베이터 역할도 하고 있다. 주로 이공계 학과 연구실적이 그 대상이 된다. 14일 오후 고려대 자연계캠퍼스 산학관에 있는 사무실에서 장 신임대표를 만났다. 그는 고려대 전자공학과(81학번)를 졸업한 동문이기도 하다.

Q : 한국 대학의 기술지주회사의 역사는 어떻게 되나.

A : A : “미국이나 이스라엘 등의 대학 기술지주회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활발하게 운영돼 오면서 창업 생태계를 이끌어왔지만, 한국은 이제 걸음마 수준이다. 2008년 설립된 한양대 기술지주가 국내 최초다. 고려대 기술지주도 2009년 9월 설립돼 이제 만 10년이 됐다. KAIST 등 과기특성화대 기술지주도 2014년에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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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수 고려대 기술지주회사 대표가 14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이공계캠퍼스내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 1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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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대학의 기술지주회사가 왜 중요한가.

A : A : “기업의 혁신 방법과 대학의 시대적 역할이 모두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1세대 대학이 교육 중심이라면, 2세대 대학은 교육과 연구 중심이라 할 수 있다. 이제 3세대를 맞은 대학은 기술 사업화를 통한 가치 창출의 장으로 변신하고 있다. 이는 곧 기업의 혁신 트렌드의 변화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 기업이 자체 R&D를 통해 혁신을 꾀했다면, 이제는 기술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의 시대가 되고 있다. 내부 R&D 보다는 외부 스타트업 등에 투자하거나 인수ㆍ합병(M&A)하는 방식으로 기술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는 얘기다. 결국 R&D의 근원인 대학과 연구소가 기술혁신의 뿌리로 등장한 것이다. 실리콘밸리로 대표되는 미국이나, 창업국가로 잘 알려진 이스라엘은 기술지주회사의 전통이 오래됐다.”

Q : 우리는 왜 이리 늦었나.

A : A :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산업적 특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그간 주력산업인 전기ㆍ전자ㆍ중화학공업 등이 대기업 중심으로 성장했다. 수직 계열화와 대량 생산체제 속에서 고속성장 해왔다. 선진국이 걸어온 길을 빠르게 따라가는 패스트 팔로우(fast-follow) 전략을 써왔기 때문에 기술창업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게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대학 역시 이런 대량생산 체제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 정도에 그쳤던 셈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대기업은 물론 국가 전체적으로도 미래 성장동력 발굴에 애로를 겪고 있다. 이걸 풀어줄 원천이 대학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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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수 고려대 기술지주회사 대표가 14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이공계캠퍼스내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 1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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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최근 한국의 R&D 투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1위 수준이다. 그런데도 왜 성장동력이 식어가고 있을까.

A : A :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R&D과제 성공률 98%라는 말도 안 되는 성공률이 우리나라 문제의 현주소다. 미국 IBM 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들은 얘기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연구과제의 성공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그곳 관계자에게 물었다. 요즘 말로‘뼈를 때리는’ 답이 돌아왔다. ‘해당 분야에 일하는 사람들이 연구 결과물의 성과를 얼마나 인정해주느냐가 중요하다. 애초의 목표를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결과가 아니라면 더 큰 문제다. 연구의 목표 세팅조차 제대로 못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차마 한국 R&D 과제의 성공률 98%라는 얘기는 하지 못했다.”

Q : 고려대 기술지주의 그간의 성과는.

A : A : “아직 성과를 말하기엔 이르다. 현금 122억원에 특허 현물을 합쳐 자본금 204억원으로 시작했다. 그간 총 42개의 회사에 투자했다. 절반 이상이 최근 2~3년 안에 투자한 회사다. 일부 구주를 매각해 회수된 이익이 15억원 정도다. 현재는 35개 회사에 투자하고 있는데 절반 이상이 교수가 직접 창업하거나 최고기술경영자(CTO) 또는 대주주로 있는 형태다. 30%는 학생 창업, 나머지는 외부에 기술을 넘긴 경우다. 다행이라면, 기술지주의 자본금으로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투자자를 불러 모으는 펀드 방식이라는 점이다. 투자 생태계가 나름 갖춰졌다는 얘기다. 현재 4개의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규모는 208억원 가량이다. 이중 정부가 출자한 모태펀드의 비율이 60~70%다. 고려대 기술지주가 투자하는 금액은 5~10% 정도다. 스마트 커피 로스팅 머신을 생산하는 스트롱홀드처럼 일본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가 투자한 전도유망한 학생 창업 회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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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수 고려대 기술지주회사 대표가 14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이공계캠퍼스내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 1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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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기술사업화는 대학뿐 아니라 우리나라 정부 출연연구소들의 숙제이기도 하다. 왜 기술 사업화가 잘 안 되는 걸까.

A : A : “수년 전 산업자원부가 기술 이전 사업화 장애요인을 조사한 적이 있다. 가장 큰 이유(29%)가 ‘기술 이전 사업화를 지원하는 자원과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기술을 사업화할 수 있는 창업자 발굴이 어렵다’(21%), ‘사업성이나 가치가 높은 기술이 부족하다’(16%), ‘연구자의 기술사업화 인식이 부족하다’(13%), ‘대학과 공공연의 보유기술에 대한 기업의 인식이 낮다’(10%) 순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지난 3년 동안 삼성미래기술육성센터장으로 도전적이며 혁신적인 연구자 발굴하면서 느낀 점은 해가 갈수록 훌륭한 젊은 연구자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 역시 개방형 R&D, 오픈 이노베이션의 시대에 적응해야 한다는 점에서 희망적인 미래를 본다.“

장 대표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기술전략 전문가다. 삼성종합기술원 연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이후 삼성전자 기술기획팀, 정보통신총괄 신규사업기획그룹장, 미국 SISA법인장, DMC연구소 기술전략팀장 등을 거쳐 2015년부터 최근까지 삼성전자 미래기술육성센터장 겸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사무국장을 지냈다.

그는 “앞으로 고려대 기술지주회사의 인큐베이팅 기능을 더 강화하고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연구자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할 것”이라며 “지금과 같은 초기에는 성공모델을 찾아 창업 분위기를 살려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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