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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필동정담] 세습(世襲)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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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처럼 세습(世襲)에 관대한 나라는 없을 듯하다. 가업이든 권력이든 대를 이어 넘겨준다. 정치권에서 세습은 더욱 자연스럽다. 중의원 5명 가운데 1명, 자민당 소속으로는 3명 가운데 1명꼴로 세습 의원이다. 아베 신조 총리는 외조부의 유명세에다 부친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해 3대를 이은 대표적인 세습 정치인이다.

정치에서야 유권자들로부터 선택을 받기만 하면 세습 자체를 문제 삼기 어렵다. 정치 활동 하는 집안 어른을 어린 시절부터 보며 남들보다 더 빨리,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참모나 지지 세력을 넘겨받으면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도 있다. 어찌 보면 효율적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측면과 비판도 만만치 않다. 선대의 후광 효과를 얻고 등극할 경우 당사자의 정치 철학이나 정책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고 평가받기 어렵다.

그런데도 현실은 다르다. 재벌이나 사학재단이나 창업자 집안의 세습은 당연시된다. 종교계에서도 그렇다. 10만여 신도를 가진 명성교회가 안팎의 곱지 않은 시선을 외면하며 부자로 이어지는 담임목사 선임을 관철시킨 걸 보면 놀랍다. 2000년대까지 충현·광림·소망·금란교회 등 대형 교회에서 담임목사 세습이 이뤄져 왔으니 놀랄 일도 아니다. 2013년부터 5년간 대물림 세습이 이뤄진 교회가 143곳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마침내 사퇴한 조국 법무부 장관 사태 초기, 들불처럼 공분을 키운 건 사모펀드도 웅동학원도 아니었다. 딸에게 지급된 금수저 장학금과 논문 제1저자 등재였다. 과도한 검찰권 행사에 대한 비판은 별도의 문제다. 청년들이 많이 분노했다. 조 전 장관도 사퇴문에서 "상처받은 젊은이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어 놓고 학력과 재산의 대물림을 위해 비난했던 대상을 능가하는 행태를 보인 언행 불일치에 장삼이사들이 고개를 돌렸다.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을 '부모 잘 만나야 성공하는 나라'로 낙인찍어 버리면 희망은 사라진다. 세습의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된다.

[윤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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