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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이지누 칼럼]명예를 탐하되, 훔치지는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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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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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에 발간한 어느 책에 “나는 한때 넓이나 깊이보다 높이를 추구했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물론 말미에는 반성이 뒤따랐고 앞으로는 높이를 추구하기보다 오히려 깊이와 넓이를 추구하는 삶을 살겠다는 의지도 밝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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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높이를 포기한다는 것은 나의 한계를 인정했다는 것과도 같다. 높이를 포기하자 마음은 편해졌고, 지금까지 스스로에게 다짐한 대로 흐트러지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다.

얼마 전, 공부방을 정리하고 있는데 아침부터 수선스레 문자음이 울렸다. 내용을 보니 나는 자주 겪어서 내성이 생긴 일이지만 지인은 처음 당한 것 같았다. 문자를 보낸 이는 전공도 그렇지만 중국 통이다. 여러 매체에 연재를 했고 중국에 관한 책을 제법 많이 출간한 축에 속하는 인재다. 그렇지만 늘 대학에서의 강의와 집필 그리고 연구소 프로젝트 수행의 경계에서 허우적거리면서도 용기를 잃지 않는 평범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와 통화를 하는데 놀라웠다. 나 정도의 내성으로도 감당이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인은 2017년 주간경향에 1년 동안 중국의 고대 도읍지에 대해 연재를 했고, 지난해 봄에 그것을 다시 매만져 한권의 책으로 출판을 했었다. 재기발랄하며 과거와 현대를 초스피드로 넘나드는 그의 글은 고리타분할 수 있는 중국 역사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만들기 일쑤다. 그것은 그가 중국에 관한 한 대단한 넓이와 깊이의 공부가 축적되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넓이와 깊이를 고스란히 자기의 것으로 만들려는 사람이 있었다. 이건 뭐 표절 정도가 아니라 곧이곧대로 옮겨 놓은 것과 같았다. 개인 블로그에도 차마 그런 짓을 하기 어려울 텐데 그 사람은 버젓이 지방의 인터넷 매체에 자기 것인 양 글을 썼다. 그것도 한 차례로 그친 것이 아니라 연재를 했으니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결국 사실이 드러나 보름 전쯤 매체의 편집장과 그 사람의 사과문이 실리고 베끼기 연재가 중단됐지만 너무도 어이없는 일이다. 요즈음 같은 세상에 그런 일을 생각했다는 것도 그렇거니와 그것이 터무니없이 실행에 옮겨졌고 더구나 매체의 여과나 검증 없이 실렸다는 것이 더욱 놀라웠다. 자유여행가를 자처하는 그 사람은 적당한 글을 물색해서 마치 그 글이 자신의 것인 양 위장한 채 글 뒤에 숨었을 것이다. 다행히 곧 들통이 나서 책을 냈던 지인이나 책과 신문을 보던 독자들에게 다행이긴 하지만 이런 일은 수두룩하다.

IMF 외환위기가 막 지났을 때였다. 당시 출판사를 하는 후배와 함께 ‘디새집’이라는 계간지를 창간했었다. 나는 콘텐츠만 가진 채였으며, 창간을 위한 모든 준비는 후배가 했다. 사람을 모아 창간 준비를 한 기간까지 3년 남짓, 나는 나의 모든 정열과 불같은 열정을 오로지 ‘디새집’에 바쳤다. 창간하자마자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다. 나는 발행인과의 불화 끝에 2002년 봄 출판사를 떠나고 말았다.

그 후, 뜻밖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내가 부산에서 캘린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전혀 그런 일이 없었는데 말이다. 알고 보니 내로라하는 부산의 서점에서 멋대로 사진을 구해 책갈피와 함께 만든 것이었다. 그 무렵 내가 사진으로 엽서를 만들었다는 소식도 들렸다. 알고 보니 후배가 책을 낸다고 하여 사진을 준 적이 있는데 출판사에서 나와 상의 없이 책의 홍보용 엽서를 제작하여 뿌린 것이었다. 또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은 내가 모 잡지에 연재한 내용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타이핑해서 자기가 쓴 글이라며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었다. 당시 그 잡지는 홈페이지에 원문서비스가 없어서 인터넷에서는 볼 수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는 타이핑하는 수고를 감수하며 내가 연재했던 집과 음식에 관한 이야기 전체를 그런 식으로 올렸었다.

또 제주도에 대하여 120페이지 남짓한 책을 쓴 적이 있는데 모 결혼정보업체에서 책 전체를 스캔해서 올린 일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어이없는 내용을 본 적도 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인터넷에 내가 촬영한 사진과 자신의 글을 짜깁기하여 편집한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다시 얼토당토않은 경험을 했다. 병치레 후 사람 만나는 일을 극히 꺼리는 나를 구태여 찾아온 지인이 있었다. 그러곤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며 불쑥 책을 내밀었다. 비매품이었다. 처음에는 흥미진진했고 반가웠다. 이미 고인이 된 30년 지기인 선배를 추모하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책의 내용 전부가 내가 선배를 매체에 소개하여 쓴 글이거나 앞에 말한 ‘디새집’이라는 계간지에 실렸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책장을 넘기다 보니 어느 미술평론가가 쓴 글 중에 그 선배가 나와 함께 ‘디새집’을 발행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앞에서 밝혔듯 나는 편집인이었을 뿐 ‘디새집’의 발행인은 출판사 사장이었다. 그리고 선배는 필자였다. 서로의 역할과 사실이 명확한데 왜 그런 허튼 글을 썼을까. ‘디새집’을 한 번이라도 들춰 봤으면 단박에 알 수 있는 사실인데 말이다. 더구나 그 부분이 선배의 업적으로 발췌되어 일간지에 실리기까지 했는데 그들은 바로잡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기자에게 연락해 삭제하였으니 이것은 또 무슨 경우인가. 그 책의 발행인은 선배와 함께 내가 30년 가까이 알아 온 사람이다. 과연 그도 몰랐을까.

어쨌든 높이를 탐하는 사람들을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말이다. 명예는 정당하게 얻어야 하지 않겠나.

나는 지금도 가을호 마감에 쫓기며 글과 그림 그리고 사진을 버무려 또 다른 계간지를 만들고 있다. 내 깜냥은 그때나 지금이나 작가이자 편집장일 뿐이다. 그것이 나의 한계이지만 모자라는 것 없이 충분하고 행복하다. 그러나 이처럼 남의 생각과 수고를 교묘하게 훔쳐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가증스러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릴 때마다 허탈하다.

자신의 생각과 깜냥에 맞는 삶을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아침이다.

이지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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