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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ESC] 어묵이 갑질하네…딱새우·흑돼지·대게 만난 어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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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묵 고향 전국에 여러 곳

딱새우·흑돼지 넣은 제주 어묵

대게 넣어 더 맛있는 속초산

통영엔 타르트 모양 어묵 있어

46년 역사 자랑하는 군산 어묵까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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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묵 하면 부산이라지만, 눈을 돌려보면 어묵은 어디에나 있다. 개성과 고집, 전통을 뽐내는 다른 지역의 어묵 가게 중 네 곳을 소개한다. 택배로 주문해 맛보고 인터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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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어묵’···어묵에 제주를 담다

“제주도 마트에 진열된 어묵은 부산 어묵이 대부분이더라. 제주다운 어묵은 뭘까 생각했다.” 제주 서귀포시 매일올레시장 들머리에 문을 연 ‘제주어묵’ 김봉진(42) 대표와 김윤수(24) 점장의 말이다. 지난 7월27일에 문 연 따끈한 어묵 가게다. 어묵가게 대부분은 반죽이나 어육 반제품을 전문 업체로부터 공급받는데, 이곳은 다르다. 식품업체 메뉴개발팀에서 일했던 김봉진 대표와 김윤수씨는 냉동하지 않은 어육을 직접 반죽해서 제조한다. 보존료와 향미증진제도 넣지 않는다. 재료 수급과 조리, 판매까지 모두 매장에서 해결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전복, 딱새우, 흑돼지, 우도 땅콩, 녹차 등 제주 특산물을 어묵 부재료로 사용해 맛이 특별하다. 채소도 매일올레시장에서 구입한다. 반죽에 사용하는 얼음을 제주 암반수로 쓸 정도로 지역 생산물에 대한 고집이 각별하다. 얼음을 반죽 기계에 넣어 같이 가는 것이다. 이 가게에서 만든 것 중엔 어묵 이외에도 독특한 게 있다. 광어어묵전이다. “제주지역은 4·3 항쟁 등 의외로 제사가 많다. 제사상엔 생선전이 빠지지 않는다. 이를 대신할 광어 어묵전도 만든다. 밀가루와 전분을 넣지 않은 어육 95% 반죽으로 만들어서 구울 때 형태가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게 숙제다.”

제주의 향이 가득한 어묵 맛이 궁금해서 몇 가지를 주문했다. 택배 박스를 열자 딱새우 어묵이 엄청난 존재감을 뿜었다. 한 마리가 통째로 어묵에 싸여 있는 모양새에 놀랐다. 가게 문 연 첫날, 손님들이 저거 보라고 수군거렸다는 그 어묵이다. 김윤수씨는 “보기엔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머리도 쓸모가 있다. 똑 떼서 어묵탕에 넣었더니 갑각류의 감칠맛이 폴폴 우러난다”고 말한다. 간 땅콩을 올려 찐 어묵은 밭의 고소함이, 전복이 박힌 어묵은 바다의 고소함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굵게 썬 돼지고기를 깻잎으로 감싼 후 어묵으로만 흑돼지 어묵은 씹을 때마다 구수한 육즙이 퍼진다. (딱새우·전복·흑돼지 어묵 각각 4천원, 광어 어묵전 3천원, 우도 땅콩·오설록 녹차 어묵 각각 3천원/제주 서귀포시 중앙로54번길 14/064-732-5575)

‘갑질어묵···속초의 붉은 대게와 만난 어묵

강원도 속초시에 있는 관광수산시장에는 ‘갑질어묵’이라는 독특한 가게가 있다. 어묵은 무엇으로 ‘갑질’을 할까. 탱탱함? 쫄깃함? 실은 ‘으뜸 품질’이란 뜻의 한자다. 이헌교 사장(58)은 본인의 한자 이름으로 얘기를 이어갔다. “’헌법’에 쓰는 ‘헌’, ’교육’에 쓰는 ‘교’를 쓴다.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쓰는 돌림자를 딸인 나에게 썼다.” 이곳의 어묵은 얼리지 않은 선어 연육으로 만든다. 연육 80%에 전분 10%를 섞는다. 여름철에는 명태와 실꼬리돔 어육으로 어묵을 만들고, 겨울에 파는 ‘물어묵’(온도 유지를 위해 따끈한 국물에 담근 어묵)은 갈치, 도미, 클로렐라 등으로 제조한다. 지역 특산물인 붉은 대게 살을 섞어 만든 어묵도 있는데, 별미라서 인기다. “바로 구운 생선은 살이 부드럽지만, 식으면 단단해진다. 탱탱하고 쫄깃해지는 거다. 우리 어묵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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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묵 조직이 너무 치밀하면 씹을 때 뽀득뽀득 입안에서 겉도는 느낌이 난다. 갑질어묵은 연하면서도 쫀득한 식감이다. 어묵 세트 하나당 한 팩씩 살 수 있는 어묵탕 소스는 이 사장이 붉은 대게의 내장을 활용해 직접 만들었다. 농축 소스에 물만 부으면 되지만, 마침 집에 미나리가 있어서 왕창 올렸다. 말캉해진 어묵에 데친 미나리를 척척 걸치고 고추냉이를 푼 간장에 찍어 먹으니 땀이 쏙 빠진다. (어묵세트 1만2천~1만6천원. 붉은 대게장 어묵탕 소스 1천원/강원 속초시 중앙시장로6길 34/033-636-6369)

‘썸타르’···어묵과 타르트가 ‘썸’타네

경상남도 통영시에 있는 루지 체험장 ‘스카이라인 루지’ 근처에는 디저트 카페 ‘썸타르’가 있다. 커피와 타르트, 그리고 어묵을 판다. 진열장 안에 있는 타르트와 어묵은 얼핏 보면 구별이 쉽지 않다. “머핀이냐고 묻는 손님도 있다.” 추미애 대표(34)의 말이다. 그는 남편 허민우씨와 어육 100% 반죽을 오븐에 굽고 토핑을 올린 어묵 타르트를 만든다. 이들은 결혼 12년차 동갑내기 부부다. “가게 이름은 ‘타르트와 어묵이 썸을 탄다’는 의미다.” 허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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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에 다니던 허민우씨는 불황이 닥치자 서울에 있는 어묵 크로켓 가게에서 일을 배우고, 고속도로휴게소에서 어묵 판매원으로도 일도 했다. 언젠가 가게를 열 요량으로 어묵을 공부하다 홈 베이킹을 하는 아내가 자주 사용하는 오븐에 눈길이 멈췄다. 몸에도 좋고, 기름기 없는 담백한 어묵을 만들어 보고 싶었던 허씨는 본격적으로 ‘오븐 어묵’에 매달렸다. 굽는 시간과 온도를 맞추기가 까다로워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단다. “오븐에서 조리한 어묵은 튀기거나 찐 어묵보다 탱탱하고 쫄깃하다.” 허씨가 자랑했다. 타르트 모양의 오븐 어묵을 만들고 그 안에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 가짓수를 늘렸다. 그리고는 ‘어묵 타르트’라고 이름 붙였다.

아홉 가지 중에서 고구마 오븐 어묵 타르트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겉에는 달콤한 고구마 샐러드를 올리고 속은 촉촉한 고구마 퓌레로 채웠다. 버섯 크림 맛 어묵 타르트는 걸쭉한 크림소스와 다져 넣은 청양고추의 매콤함이 올라와 독특하다. 추 대표에게 본인이 만든 일반적인 타르트와 남편의 어묵 타르트 중에 어떤 것이 더 잘 팔리는지 물자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매일 아침 소량으로 만드는 어묵 타르트가 더 빨리 팔린다.” (감자·고구마·단호박·매콤 참치·피자·버섯 크림·치킨·모차렐라 치즈 어묵 타르트 등 각 2천8백원/경남 통영시 데메4길 68. 010-4878-6923)

‘동양어묵’···정말 얇은 어묵, 손금이 비치네!

전라북도 군산 사람들에게 어묵은 46년 전통의 ‘동양어묵’이다. 어묵 공장 바로 옆 ‘동양스넥’에선 분식과 어묵 요리를 판다. 동양어묵과 올해 문 연 동양스넥을 운영하는 이주원(38) 실장은 3대째 집안의 가업을 잇는 이다. 요리학교 ‘르 코르동 블뢰 시드니’를 졸업하고 서울 이태원과 홍대 근처에 ‘고사소요’와 ‘아스띠’를 열었던 이승규 셰프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에게 개명한 까닭을 물었다. “<미쉐린 가이드> 평가만 바라보고 살았다. 독불장군 같은 셰프였지만, 가업을 잇는 지금은 제 개인의 명예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마음을 다잡는 의미로 이름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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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어묵에서 판매하는 4가지 어묵 중엔 포장지 색깔을 때문에 ‘핑크 어묵’이라고 불리는 게 있다. ‘종이 어묵’이라고도 부른다. 손금이 비칠 정도로 얇아서 붙은 별명이다. 택배로 주문한 어묵 한장을 쭉 찢어서 입에 넣었다. 기름에 지진 갈치구이처럼 달고 구수하다. 두께는 0.03㎜ 정도란다. 서너장을 겹쳐야 일반 어묵 한장의 두께가 된다. 일반 어묵보다 덜 짜지만, 감칠맛은 더 많이 느껴진다.

“소풍 때마다 아버지가 친구들과 나눠 먹으라고 갓 만든 어묵을 주셨다. 그 어묵 덕에 인기 최고였다.” 어려서 ‘어묵 공장 큰아들’로 불렸다는 이주원씨의 추억담을 들어서인지 반찬용 어묵에 자꾸 손이 간다. 부들부들해서 훌훌 넘어가는 어묵탕에 밀가루 수제비 몇 점도 넣었다. 채 썬 어묵을 잔뜩 넣은 김밥은 오이를 곁들였다. 에어프라이어에 넣어 파삭한 어묵 과자도 만들었다. 냉장고에 쌓아둔 어묵 서른여섯 봉지가 눈에 띄게 줄어갔다. 집에 어묵 도둑이 있다. 물론 도둑은 나다. (구슬·꼬치 어묵 각각 3천원, 핑크·초록 어묵 각 18봉에 1만원/전라북도 군산시 대명동 385-70/010-6404-5089)

글·사진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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