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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 (목)

사람 죽어도 정부는 외면… ‘강제개종 희생자의 날’ 공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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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선화씨 2007년 10월 강제개종 거부로 사망

-2018년 두 번째 희생자 발생… ‘피해자 1500명’

-급증하는 ‘마녀사냥’식 강제개종 사업… 국제망신

-강피연, 정부 ‘모르쇠’ 비판… 개종목사 처벌 촉구

메트로신문사

‘강제개종 철폐’ 외치는 시민들. 2019.10.7/제공 강피연


대한민국에서 ‘강제개종’으로 인해 처음 회자된 것은 고(故) 김선화씨가 숨진 지난 2007년이지만, 16세기 장로교 창시자인 존 칼빈(John Calvin)이 자신의 교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개종하고 학살한 이른바 ‘마녀사냥’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김씨 외에도 당시 27세의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한 고 구지인씨 등을 비롯해 강제개종에 대한 여론은 날로 고조되고 있다. 왜 이 같은 일이 일어났을까.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공원에서 강제개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직접 들어봤다.

“강제개종 철폐하라. 이러한 비극이 대한민국에서 없어져야 합니다”

소나기가 내리는 7일 오후 3시. 우의를 착용한 사람들이 경찰의 호위 아래 보신각 앞에서 출발한 가두행진에 여념이 없다. 한 손에는 ‘강제개종 철폐’라고 적힌 피켓과 또 한 손에는 ‘평화의 꽃으로 피어나라’는 글귀가 적힌 보라색 풍선을 들었다. 흐느껴 우는 몇몇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강제개종 피해자와 유가족 등으로 꾸려진 강제개종피해인권연대(강피연) 회원들이다. 이들은 강제개종을 중단시키고자 2007년 8월 설립 이래 꾸준히 피해자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정부기관에 이를 알려왔다. 그리고 이날 이곳에서 매년 10월 7일을 ‘강제개종 희생자의 날’로 공표했다.

◆韓강제개종 국제망신… 법이 있는데 왜? 이유는 ‘돈’

강제개종의 실태는 꽤 심각한 수준이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을 권리(헌법 20조 1항)가 있음에도 강피연에 따르면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자 수는 1500여명에 이른다. 지난해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는 응답자 중 협박·세뇌가 921건으로 가장 많았고 감금 802건, 납치 663건, 폭행 541건, 수갑·밧줄 367건 등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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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공원에서 열린 ‘10.7 강제개종 희생자의 날’ 공표식에서 한 참석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9.10.7/박완희 기자


강제개종은 반헌법적 인권유린임에도 해마다 100회 이상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피해 건수는 지난 2012년을 기준으로 전년도 60건에서 다음해 130건으로 두 배 이상 뛰었다. 2014년에는 160건으로 급증했다. 그런데 여기서 이 같은 강제개종을 이끄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일부 개신교 목사라는 것이다.

박상익 강피연 대표는 앞서 “개종교육이 돈벌이의 목적이라는 것은 이미 법원판결로 드러났다”며 “한 개종목사가 강제개종교육으로 벌어들인 금액은 14억원 이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강제개종에 대한 비판 목소리는 최근 전 세계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올해 7월 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UN) 인권이사회에서는 유럽의 한 인권단체인 ‘유럽 양심의 자유 협의회(CAP-LC)’가 대한민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강제개종에 대한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8월 16일에는 미(美) 국무부가 주관하고 약 100개국 정부와 500개의 NGO 종교 단체 등이 참가한 ‘종교의 자유 증진을 위한 장관급회의’에서 한국의 소수종교 신도들을 향한 강제개종에 대해 인권침해 사례가 발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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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유엔(UN)본부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 제41차 회의 모습. 2019.7.3/제공 CAP-LC


◆‘강제개종’ 피의자는 가족? 진짜 범인 따로 있다

2007년 10월 7일은 울산에 사는 고 김선화씨가 강제개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전 남편 A씨가 휘두른 둔기에 맞아 숨진 날이다. 개종목사의 사주를 받은 A씨는 기성교단 소속이 아니란 이유로 둔기를 휘둘러 김씨를 살해했다. 여기서 A씨는 법의 심판을 받았지만, 이를 사주한 개종목사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1인당 수천만원에 이르는 사례금을 받고 사업체 형태로 진행되는 강제개종 사업을 통해 매년 수백명이 납치·감금·폭행 등으로 개종을 강요받고 있다. 그러나 사법당국은 ‘종교 문제’ ‘집안 문제’ 등을 이유로 이를 방치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가정사로 치부하기엔 상황은 심각해 보인다.

지난해 1월에는 전남에서 고 구지인씨가 강제개종 과정에서 사망했다. 특히 구씨는 1차 강제개종 과정에서 탈출한 뒤 개종목사의 처벌을 사법당국에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2차로 끌려가 사망했다. 사인은 저산소성 뇌손상. 그러나 구씨의 경우도 이를 사주한 목사는 법망을 피해갔다는 게 석연찮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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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익 강제개종피해인권연대(강피연) 대표가 7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공원에서 열린 ‘10.7 강제개종 희생자의 날’ 공표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2019.10.7/제공 강피연


◆10.7 강제개종 희생자의 날 공표 “더는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길”

박상익 대표는 “국민 앞에 그들의 희생을 지키지 못한 죄인으로서 다시 사죄드리고 희생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오늘 강제개종 희생자의 날을 공표한다”며 “다시는 강제개종으로 인한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간곡히 바란다”고 성토했다.

박 대표는 “첫 희생자의 소식이 전해진 날부터 이 안타까운 소식을 알려왔다”며 “그러나 개종목사들은 악행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살인마 되는 것을 택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18년 1월 구씨의 죽음 앞에서 국가는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했다”며 “정부는 그녀가 올린 청원 글을 무시했고, 사건 발생 1년이 지났지만 검찰은 주범을 수사조차 하지 않고 우리에게 잊혀지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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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공원에서 ‘10.7 강제개종 희생자의 날’ 공표식이 진행되고 있다. 2019.10.7/박완희 기자


고 구씨의 친한 지인이었던 장선아(가명, 25, 여)씨와 고 김씨의 동생 김선진(가명, 40, 여)씨는 추도사 낭독을 통해 “가족을 이용해 납치·감금을 조장한 강제개종 목사들에 대해 처벌해 달라” “더는 강제개종으로 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신념을 존중받는 인권, 신념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이날 공표식은 강제개종 피해자 추모영상을 시작으로 추도사 낭독, 변호사협회 정병섭 변호사 발제, 추모관 헌화식, 개종피해 퍼포먼스, 가두행진 등 순으로 진행됐다. 공표식엔 약 400여명의 시민이 자리했다.

박완희 주재기자 wanhee@metr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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