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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3 (목)

‘조롱에 둔 새’ 거부하는 신여성, 그 욕망을 단죄하는 서사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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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CJ문화재단 공동기획]

43) 미몽

감독 양주남(1936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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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룡: 대체 당신은 매일 어디를 나가는 거요?

애순: 그럼 날 방안에다 꼭 가둬두시구료. 난 조롱에 둔 새는 아니니까요.

―<미몽>(양주남, 1936)

<미몽>의 첫 장면은 ‘조롱에 둔 새’를 보여준다. 하지만 애순(문예봉)은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 로라처럼, 새장에 갇힌 새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제 막 근대가 도래한 1930년대의 도시 경성, 신여성 애순은 답답한 선룡(이금룡)과의 결혼 생활보다는 자신의 자유로운 욕망을 펼쳐 보인다. ‘데파트’에서 보드라운 감촉의 최고급 옷을 사 입고 젊은 청년 창건(김인규)과 호텔에서 밀월을 즐긴다. 또 당대 최고의 무용가(조택원)의 공연을 보고 무작정 그를 탐한다. 이처럼 욕망을 따라 움직이는 그녀의 행보는 담대하다. 특히 용산역에서 막 출발하려는 조택원이 탄 기차와 이를 따라잡기 위해 교통규칙을 위반해 달리는 애순의 택시를 빠르게 보여주는 교차편집 장면은, 위반하고 탈주하는 근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잘 드러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신의 욕망을 전면화한 애순의 행위는 ‘유한마담의 치정’이라는 신문기사로 일갈되고, 영화는 현모양처를 훌훌 벗어던진 여염집 여성은 그 죄과를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 옳다고 서둘러 마무리한다.

2006년에 발굴 공개된 발성영화 <미몽>은 근현대문화재로 등재된,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안종화·1934)가 발견되기 전까지 한국영상자료원이 소장하고 있던 가장 오래된 한국영화였다. 이 영화는 욕망을 전면에 내세우는 신여성을 배우 문예봉이 연기한다는 것과 1930년대 조선영화의 기술과 문법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사적 의의가 있다. 더불어 급격하게 변하는 근대 도시 공간 경성의 백화점, 호텔, 카페는 물론 거리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미몽>은 가부장적 질서를 배반한 애순을 단죄하면서, 그 뒤 한국영화에서 여성 섹슈얼리티를 다루는 서사의 원형을 제시한다. 1990년대까지 한국영화에선 섹슈얼리티의 주체로 여성 캐릭터가 종종 등장하지만 곧 이를 처벌하는 작업을 반복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혜경/영화연구자·중앙대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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