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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50억 지원한 '청년매장' 303곳 중 211곳 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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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공사, 휴게소 입점하는 청년에 임대료 깎아주고 컨설팅 해주지만

입점 2년 지나면 임대료 2배 올려… 106곳은 1년도 못 버티고 문 닫아

"보여주기식 사업, 지원기간 늘려야"

9일 오후 경기도 안성시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안성휴게소의 점포들은 휴일을 맞아 분주했다. 이런 가게들 틈새에 '청년창업'이라는 간판을 단 빈 매장이 눈에 띄었다. 감자 스낵을 팔던 곳인데 지난 7월 폐업했다. 2017년 가을 한국도로공사의 고속도로 휴게소 청년 창업 지원 제도의 도움을 받아 가게 문을 열었는데 2년 만에 접었다. 이 가게를 운영하던 A씨는 "장사도 잘 안 되고 해서 그만뒀다"고 했다. 핫도그를 파는 옆 가게에도 '청년창업' 간판이 달려 있었는데 이 가게도 "더 못 버티겠다"면서 연말이면 문을 닫을 예정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9일 경기 안성휴게소의 한 '청년창업 매장'이 폐업해 비어 있는 모습. /최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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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휴게소 청년 창업 사업은 한국도로공사가 전국 195개 휴게소에 청년들이 가게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한 것으로 지난 2014년 시작됐다. 9일 도로공사와 국회 국토위원회 송석준 의원(자유한국당)에 따르면, 임대료 인하 등 각종 지원에도 불구하고 올해까지 지원한 303개 가게 가운데는 211곳(70%)이 문을 닫은 것으로 집계됐다. 절반(106곳)은 문을 연 지 1년도 안 돼 폐업했다. 청년 창업자들의 잘못도 있지만, 지원이 최대 2년으로 짧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청년층 취업난이 심해지자 창업 기회를 주겠다고 세금 지원을 앞세워 만든 대책인데, 지속 가능성은 뒷전인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사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청년 창업 절반은 1년도 못 버티고 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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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업은 만 20세 이상 만 39세 이하 창업자를 대상으로 하는데, 기존 휴게소 점포들보다 임대료는 2.5배 이상 싸고, 휴게소 운영업체에 내는 수수료는 절반으로 깎아준다. 인테리어 비용 일부도 지원하고, 창업 컨설팅까지 해줬다. 그런데도 상당수 매장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도로공사가 청년 창업 매장에 감면해준 임대료만 10억7000만원에 달하지만, 작년 개점한 매장 39곳 중 11곳이 문을 닫았다. 송 의원은 "도로공사가 지금까지 청년 창업 매장에 지원한 돈은 최소 50억원은 될 것으로 추산되는데, 정작 청년 창업이라는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장사는 생각만큼 안 되고 휴게소 '갑질'에 힘들다"

이 사업의 지원을 받아 '내 가게'를 갖게 됐지만, 폐업을 결정한 청년들은 "장사가 생각보다 어렵고 잘 안 됐다" "휴게소 운영업체의 '갑질'도 문제다"라는 말을 한다. 경기 하남시 드림휴게소에서 청년 창업으로 스테이크 판매점을 운영하는 김모(26)씨도 "곧 가게를 접을 예정"이라고 했다. 김씨는 "하루 14시간씩 쉬지 않고 일해도 한 달에 300만~400만원 정도밖에 못 번다"며 "휴게소 운영업체에서 수수료로 매출액 22%를 떼는데, 17% 정도를 떼는 백화점보다도 심하다"고 말했다. 그는 "곧 계약 기간 2년을 채우게 되는데, 2년이 지나면 수수료는 40~45% 수준으로 올라 부담이 지금보다 2배 수준으로 뛸 텐데 감당할 수가 없다"고 했다.

청년 창업 지원을 받았던 B씨는 "일부 휴게소는 청년 창업 매장 매출이 올라가면, 그만큼 기존 매장 매출이 줄어든다는 생각에 교묘히 장사를 방해하기까지 한다"고 했다. 청년 창업자가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거나 종업원을 늘리려 해도 이를 승인해주지 않는 식이다. 그는 "이런 속사정을 모르는 청년들이 부푼 희망을 안고 기존 창업자가 뛰쳐나간 자리를 채워나가고 있다"고 했다.

◇"2년 지원으로는 자리 잡기 어려워"

가장 큰 문제는 임대료나 수수료 인하 혜택이 2년에 그친다는 것이다. 채 자리를 잡기도 전에 지원이 끊기니 장사 경험이 일천한 청년들이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청년 창업 매장 가운데 계약 기간 2년을 넘겨 일반 매장으로 전환한 곳은 34곳이다. 이 중 14곳은 아직 운영 중이지만 59%인 20곳은 폐업했다. 폐업한 곳은 모두 전환 후 한 달이 채 지나기 전에 그만뒀다. 계약 기간이 끝나 임대료와 수수료가 순식간에 2배 이상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국도로공사 관계자는 "청년 매장이 오래 유지되는 것도 좋지만, 보다 많은 청년이 창업 기회를 살릴 수 있도록 하려는 목적도 있기 때문에 계약 기간 2년은 적당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도로공사가 청년 창업자를 더 엄격하게 심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도로공사에 따르면 창업 매장 창업자(303명) 가운데 1년 이내에 개인 사정으로 가게 문을 닫은 사람은 77명이나 된다.

김봉석 성균관대 사회학과 초빙교수는 "매장을 짧은 기간만 운영하고 그만둘 사람들 때문에 거액의 혈세가 투입된 것은 문제"라며 "젊은이들의 동기나 처한 상황을 좀 더 엄격히 따져 선정한 뒤 계약 기간을 늘려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성=최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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