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무성서원
전북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에 있는 무성서원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서원과 달리 마을 중심부에 자리해 신분과 계급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학문의 기회를 동등하게 제공했다. 전북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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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의 일부인 칠보산(467.8m)에 기대에 형성된 전북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마을 앞과 좌우에 넓은 들이 있고 가운데로 칠보천이 흐른다.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형태를 띤 이 마을에 올해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무성서원(武城書院)이 있다.
무성서원은 통일신라시대 대문장가이자 우리나라 유교의 시조로 꼽히는 고운(孤雲) 최치원의 위패와 초상이 모셔진 곳이다. 신라 말 태산(태인의 옛 지명) 태수로 부임해 선정을 베풀고 떠난 그를 위해 세운 생사당(生祠堂) 태산사가 뿌리다.
1544년(중종 39년) 태인 현감으로 온 영천 신잠 선생을 기리기 위한 생사당이 태산사와 합쳐졌고 마을 유림들에 의해 서원이 세워진 뒤 숙종 22년인 1696년 무성서원으로 사액을 받았다. 신라 말기부터 현재까지 1100여 년의 역사를 품고 있다.
무성서원은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에 있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서원과 달리 마을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신분과 계급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학문의 기회를 동등하게 제공했다. 학문을 익히는 곳을 넘어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자 민초들의 소통 공간이었던 셈이다.
배움에 있어 신분과 계급의 차이를 없앤 무성서원의 속 깊은 뜻은 건축물에서도 잘 드러난다. 건축물 대부분이 폐쇄적이지 않고 간결하며 높이가 동일하다. 무성서원을 찾은 이들은 민초를 향한 선비들의 따뜻한 배려심이 느껴진다고 입을 모은다.
일제강점기 항일 의병이 시작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일제에 우리 외교권을 빼앗긴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듬해 면암 최익현(1833∼1906)과 둔헌 임병찬(1851∼1916)이 무성서원에서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기 위해 호남의병을 일으켰다.
흥선대원군의 대대적인 서원 철폐령 속에 살아남았던 전북 유일의 서원인 무성서원은 사적 166호다. 사당과 현가루, 강수재, 비각, 명륜당 등이 남아 있다.
전북도와 정읍시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무성서원의 활용 방안을 놓고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우선 11일 무성서원에서 ‘무성서원 세계를 품다’를 주제로 축하행사를 연다. 세계유산 협약과 운용지침 등 국제규범에 근거한 관리 방안을 마련해 시행할 계획이다. 서원의 인지도 및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문화재청 공모사업인 ‘향교·서원 문화재 활용 사업’도 확대할 예정이다.
정읍시는 무성서원을 중심으로 ‘태산선비원’ 건립을 위한 행정절차를 진행 중이다. 정읍시는 무성서원 인근 4만2492m² 부지에 태산선비원을 만들어 호남 선비정신과 풍류 문화를 배우고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거점으로 만들 계획이다.
“전북이 보유한 세계유산을 잘 가꿔 한국 유·무형 문화유산의 중심지 전북의 위상을 높여가겠습니다.” 9일 송하진 전북도지사(사진)는 정읍 무성서원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고창 고인돌과 판소리, 매사냥, 농악 등 전북 문화유산 보존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 송하진 전북도지사 “철저한 고증으로 원형 복원할 것” ▼
― 유학자 집안에서 나고 자라 서원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것 같은데….
“어렸을 때부터 유학자분들이 집에 드나드셨고 얘기도 많이 들어 친근하다. 유학은 우리 전통과 사회적 관습의 근간이다. 물리적 공간 그 자체로 서원을 보존할 뿐 아니라 정신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연구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 정읍 무성서원만의 특징을 꼽자면….
“대개의 서원은 양반 자제를 대상으로 한 일종의 지방 사립학교였지만 무성서원은 향촌민의 흥학(興學)을 위한 열린 교육의 장이었다. 지식인과 대중의 소통과 공존은 무성서원이 호남 최초의 항일의병운동인 병오창의의 발발과 확산의 구심점이 되는 데에도 큰 영향을 줬다.”
― 무성서원을 어떻게 보존하고 활용할 것인가.
“세계유산에 등재된 9개 서원이 있는 시도, 문화재청과 함께 체계적인 보존 체계를 구축하겠다. 철저한 고증으로 원형을 복원하고 관람객을 위한 전시·홍보관, 편의시설을 확충할 생각이다. 서원의 핵심 콘텐츠인 기록유산의 목록화와 학술 연구, 조사보고서 발간도 추진하겠다.”
전주·정읍=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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