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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일사일언] 25%를 위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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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주희 EBS PD·'생존의 조건' 저자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대통령을 지낸 부시 가문의 아버지 부시에게는 '리 애트워터'라는 전략가가 있었다. 그는 1988년 대선에서 상대 후보에 비해 지지율이 무려 17%포인트나 뒤처지던 부시를 끝내 대통령에 당선시킨 1등 공신이다. 제삼자를 통한 네거티브 공격, 황색 언론과 정치인이 서로를 인용하는 방식으로 의혹을 부풀리는 수법 등 온갖 지저분한 전략의 달인이었지만, 그가 뛰어났던 점은 모두가 '다수파가 되어야만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고 있을 때 '열성적인 25%만 있으면 어떤 선거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그는 최대한 지저분한 선거로 투표율을 떨어뜨리고 당파심에 불타는 열성 지지자들을 투표장으로 불러내는 전략을 구사했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불행한 일이지만 그의 전략은 적중했고 선거마다 연승할 수 있었다.

문제는 상대방도 바보가 아니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당파성을 강화하는 선거 전략의 효용성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민주당 역시 지지자들의 당파성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자 미국의 선거판은 더욱 공격적으로 변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중도파가 많았던 미국 정치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어지간한 민주당원보다 더 진보적인 넬슨 록펠러 같은 정치인이 공화당의 유력 대선 주자이자 부통령까지 지냈지만, 이젠 꿈같은 일이 되고 말았다. 지지자들의 당파성과 투쟁심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는 일은 불가능해졌다. 이런 사태의 끝에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도널드 트럼프라는 대통령의 등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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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세계 각국에 스트롱맨 지도자들이 출현하는 이유도 어쩌면 당파성을 자극하는 선거 전략의 유효성을 깨달은 결과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우리에겐 '리 애트워터가 연 판도라의 상자를 어떻게 닫을 것인가?'라는 숙제가 주어진 셈이다.





[이주희 EBS PD·'생존의 조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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