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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중앙시평] 커지는 인구의 다양성, 새로운 발전 동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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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관행과 질서로

인구 다양성 담기 어려워

저출산 고령화뿐 아니라

새로운 인구 현상 보아야

중앙일보

조영태 서울대 교수, 인구학


우리는 결혼을 하면 어른이 된다는 표현을 많이 써왔다. 당연히 지금 가치관으로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사람이 많겠지만 그래도 그 표현을 활용해서 한 번 생각해 보자. 나는 가족이나 주변을 고려하지 않고 나만의 기준에 따라 결혼을 ‘선택한 어른’일까? 아니면 이제 결혼할 나이가 되었고 내 또래의 다른 사람들도 다 결혼하니 나도 따라서 결혼한 ‘어쩌다 어른’일까?

이 질문에 아마도 40대 중후반 이후의 독자들은 대부분 ‘어쩌다!’를 답할 것이다. 이들은 연령이 2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가족은 물론이고 본인 스스로도 당연히 결혼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결혼을 하면 자녀도 한두 명은 꼭 있어야 했다. 한 번도 왜 그래야 하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게 사회규범이고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그들은 ‘어쩌다 어른’이 되었고 ‘어쩌다 부모’도 되었다.

그럼 지금 30대 연령에 있는 독자들은 어떠한가? 당연히 나이가 들면 결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연령대의 적지 않은 독자들은 가족은 물론이고 남들이 뭐라 하든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 맞춰 결혼을 할지 말지, 또 한다면 언제 할지 등을 결정하겠다고 답할 것이다. 이렇게 ‘선택한 어른’은 당연히 ‘어쩌다 부모’가 되기보다는 ‘선택한 부모’가 된다. ‘어쩌다 어른’이 ‘선택한 어른’으로, ‘어쩌다 부모’가 ‘선택한 부모’로 바뀌는 것은 우리나라의 인구에 다양성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다. 비슷한 연령대에 있는 수많은 사람이 비슷한 사회경험을 공유하면 사회의 가치관은 획일화되는 경향이 짙어진다. 그럼 시장의 질서도 그 가치관에 맞추어 형성된다.

과거에 나의 부모와 내 짝의 부모는 비슷한 연령대였다. 비슷한 연령대에 있었기 때문에 사회경제적인 수준도 비슷했다. 사는 집도 자가용도 비슷했다. 당연히 집에서 알게 모르게 형성된 사회화의 과정과 가치관의 내용도 비슷했다. 40대를 보면 당연히 결혼은 했고 초등 혹은 중학생 자녀가 두 명 있으며, 집에 방은 3개 정도 있을 것이고 쇼핑은 주말에 대형마트에서 하고, 네 명의 식구에 맞춰 차는 중형차 혹은 SUV를 갖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 틀림이 없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이렇게 살면 시장은 연령에 따른 생애주기만 고려하면 된다. 대량생산 대량판매의 질서가 어김없다.

그런데 ‘선택한 어른’의 시대에는 어떠한가? 요즈음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남성들이 많다. 그것 자체로도 과거와 크게 달라진 점이지만 더 큰 변화는 그들의 연령이다. 애를 데리고 어린이집에 오는 남성을 보면 저 사람이 아빠인지, 오빠인지, 할아버지인지 가늠이 안 된다. 아빠는 물론이고 엄마의 연령대가 다양해졌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아무리 나와 내 친구의 연령이 같아도 부모의 연령대가 다르다면 나의 가정 내에서 또는 사회적 경험이 같을 수가 없다. 형성되는 가치관이 달라짐도 당연하다.

40대 중년을 봐도 이제는 이 사람이 당연히 결혼했고 자녀가 있을 것으로 가정할 수 없어졌다. 30대는 말할 것도 없다. 이 연령대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혼자 살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부모와 사는 사람도 여전히 많고 친구나 직장 동료와 함께 사는 사람들도 많다. 시장에서 대량생산 대량판매의 질서는 더는 작동하지 않게 된다.

인구에서 다양성이 커지는 현상은 거의 모든 연령대에서 전개되고 있는데, 은퇴하는 사람들의 특성을 봐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은퇴자하면 다 비슷할 것으로 가정했고 실제로 틀리지 않았다. 은퇴하는 연령에 접어든 사람들의 수가 매년 약 50여만 명 정도였고, 그들의 대부분은 등산을 다니며 소일거리를 하거나 치킨집을 여는 등 자영업자의 길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58년 개띠가 은퇴연령에 접어든 작년부터 앞으로 매년 80만 명대의 인구가 이 연령대에 들어선다. 이들의 상당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등산을 다니거나 자영업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절대적인 수가 커지는 만큼 은퇴자들의 삶도 다양화될 것이 분명하다. 예컨대 현재 공무원, 교사, 교수 등 은퇴 후 연금으로 생활할 사람들의 수가 급증한다. 은퇴했다고 갑자기 자영업의 길에 들어서기보다는 수익은 적어도 안정성이 높은 금융상품에 자산을 투자할 은퇴자도 크게 늘어난다. 노후보장이 되어있지 않은 은퇴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로 대변되는 최근의 인구현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하지만 인구에 다양성이 커지고 있는 현상은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매우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통용되던 관행과 질서로는 인구의 다양성을 담아낼 수 없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인구의 다양성을 활용할지에 따라 한국사회가 더 발전할지가 결정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구가 다양해지면 사람들의 가치관과 아이디어도 다양해질 것이고 사회 전반에 상상력도 늘어나 이제는 대량 생산·판매가 아니라 적지만 높은 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 시장이 커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 인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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