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강인춘의 웃긴다! 79살이란다(51)
[일러스트 강인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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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이 넘고부터 남편은 내 앞에서 굽신거렸다.
“여보, 저기 있잖아…….”
내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남편은 화들짝 놀라며
“왜요? 무슨 심부름시킬 일이라도 있어요?”
라고 존댓말을 쓰면서 주방에 있는 나에게로 부리나케 달려와
어쭙잖은 행동으로 내 표정을 살핀다.
그 모습에 웃음이 나오기보다는
왠지 모르게 씁쓸한 기분이 가슴에 엉켜 든다.
‘내 남자도 별수 없이 팔십이 코앞으로 다가오더니
요즘 들어 행동거지가 하나, 둘씩 탈색이 되어 가는가 보다.’
“아니야, 이 유리병 뚜껑이 내 힘으론 열리지 않아.”
사실은 주방의 음식물 쓰레기 좀 버려주면 안 될까 하고 말하려다가
남편의 깜짝 놀란 동작에 무안해진 나는 어물쩍 말머리를 돌리고 말았다.
“그래요. 잘했어. 이런 것쯤은 백수가 당연히 할 일이지 뭐.”
남편은 너무나 쉽게 병마개를 비틀어 열어주면서 힐끗 웃는다.
“왜 이렇게 굽실거려. 당신?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나한테 그런 모습 보이지 마. 당신 뻗대던 자존심은 어디로 갔어?
나, 당신 그러는 거 싫단 말이야.”
순간 입 밖까지 튀어나오려는 말을 가까스로 당겨 참았다.
그러지 않아도 요즘 자꾸만 우울해지는 남편에게
이런 눈치 없는 헛된 말로 나까지 남편의 기를 꺾을 수는 없었다.
속상했다.
그 옛날 자신감에 찬 기백으로 큰소리 땅땅 치던
남자다운 남편은 어디로 간 것일까?
정말 썩을 놈의 세월이다!
강인춘 일러스트레이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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