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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어디로 갔나요, 큰소리 땅땅 치던 든든한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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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강인춘의 웃긴다! 79살이란다(51)



중앙일보

[일러스트 강인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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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이 넘고부터 남편은 내 앞에서 굽신거렸다.

“여보, 저기 있잖아…….”

내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남편은 화들짝 놀라며

“왜요? 무슨 심부름시킬 일이라도 있어요?”

라고 존댓말을 쓰면서 주방에 있는 나에게로 부리나케 달려와

어쭙잖은 행동으로 내 표정을 살핀다.

그 모습에 웃음이 나오기보다는

왠지 모르게 씁쓸한 기분이 가슴에 엉켜 든다.

‘내 남자도 별수 없이 팔십이 코앞으로 다가오더니

요즘 들어 행동거지가 하나, 둘씩 탈색이 되어 가는가 보다.’

“아니야, 이 유리병 뚜껑이 내 힘으론 열리지 않아.”

사실은 주방의 음식물 쓰레기 좀 버려주면 안 될까 하고 말하려다가

남편의 깜짝 놀란 동작에 무안해진 나는 어물쩍 말머리를 돌리고 말았다.

“그래요. 잘했어. 이런 것쯤은 백수가 당연히 할 일이지 뭐.”

남편은 너무나 쉽게 병마개를 비틀어 열어주면서 힐끗 웃는다.

“왜 이렇게 굽실거려. 당신?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나한테 그런 모습 보이지 마. 당신 뻗대던 자존심은 어디로 갔어?

나, 당신 그러는 거 싫단 말이야.”

순간 입 밖까지 튀어나오려는 말을 가까스로 당겨 참았다.

그러지 않아도 요즘 자꾸만 우울해지는 남편에게

이런 눈치 없는 헛된 말로 나까지 남편의 기를 꺾을 수는 없었다.

속상했다.

그 옛날 자신감에 찬 기백으로 큰소리 땅땅 치던

남자다운 남편은 어디로 간 것일까?

정말 썩을 놈의 세월이다!

강인춘 일러스트레이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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