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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들리나요? ‘79년, 마산’ 그때 그 목소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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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항쟁 40주년 라디오 드라마 ‘79년, 마산’】

남포동에서 상영된 ‘그때 그 사람’ 등

부마항쟁 40돌 기리는 움직임 일어

순경·배달원·학생 증언록 취합

라디오 드라마로 제작한

MBC 경남, ‘79년, 마산’ 특히 눈길

배우 서갑숙·이상훈 등 배역 맡고

항쟁 참가자 육성 인터뷰도 담아

“40년간 주목받자 못했던 항쟁사

마음의 빚 갚는 심정으로 만들어”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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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부산 남포동 일대는 과거와 현재의 ‘민중’이 공존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8일과 9일 이틀간 남포동 광장에서 <그때 그 사람들> <김군> 등 민주주의의 가치를 곱씹는 영화들을 상영했다. 남포동을 위한 첫 작은 영화제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마련된 것은 의미 있다. 남포동은 박정희 유신독재에 저항해 1979년 10월16일 부산과 마산 지역 민중이 일어난 ‘부마민주항쟁’ 중심지 가운데 한곳이다.

부마민주항쟁 40돌을 맞는 2019년 10월, 경남 일대는 다시 1979년 그날로 돌아갔다. 16일 부산에서 시작해 18일 마산으로 번져 20일까지 이어진 항쟁은 광주민주항쟁에 영향을 끼치는 등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정부가 40년 만인 지난달 17일에야 10월16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면서 그 의미를 기리려는 문화계의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다.

“유신체제 철폐하라!” “박정희는 물러가라!”

지난 1일 서울 반포동의 한 녹음실은 최루탄 가득한 40년 전 마산 창동 사거리 한복판이었다. 유신을 종식시킨 부마민주항쟁을 조명하는 라디오 드라마 <79년, 마산>(10월7일~11월1일 매주 월 아침 8시30분, 창원 98.9㎒, 진주 91.1㎒)) 녹음 현장이다.

<79년, 마산>은 부마민주항쟁을 기리는 목소리 중에서도 가장 크고 의미 있다. 항쟁을 곁에서 지켜본 <문화방송(MBC) 경남>이 제작하는데, 실존 인물을 내세워 사실만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김현지 피디는 “40년 동안 제대로 이야기되지 않았기에 정작 지역에서도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 극화할 경우 사실을 왜곡할 수 있어 처음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책임감을 갖고 만들었다”고 말했다. <문화방송 경남>에서조차 부마민주항쟁 관련 프로그램을 만든 것은 1989년 1시간짜리 다큐멘터리가 유일하다. 김 피디는 “1989년 <마산 문화방송> 시절, 지역 최초로 노조가 결성되면서 노조의 힘으로 만들었다. 이후 30년간 왜 만들어지지 않았는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지역 방송사(<문화방송 경남>)에서 책임감을 갖고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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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부터 1년여간 준비했지만 40년간 무심했던 만큼 영상 등 관련 기록을 찾기 힘들었다. 20부작 라디오 드라마로 만들기 위해서는 방대한 자료가 필요했다. 김현지·정은희 두 피디는 진상조사위원회가 2018년 낸 보고서와 부마민주항쟁 기념사업회에서 2011년부터 만들고 있는 증언록(800쪽, 2권) 등 갖가지 정보를 취합했다. 드라마로 만들기 위해 인물을 정리하고 사건을 시간대별로 요약하는 등 오랜 작업을 거쳤고, 부마민주항쟁에 참가한 이들을 30명 가까이 만나 따로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의 육성도 라디오 드라마 중간중간 나온다. 김현지 피디는 “40년 동안 취재 노력을 많이 안 했기에 이분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과정을 유에이치디(UHD) 영상으로 촬영했다. 부마민주항쟁을 기록하기 위한 자료로 남겨두고 싶었다”고 했다. 최근에야 비로소 부마민주항쟁 사망자로 인정된 유치준씨 유족도 <79년, 마산> 마이크 앞에 앉았다. 한편의 라디오 드라마가 정보를 취합해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데도 큰 구실을 하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도 확인했다. 당시 부마민중항쟁은 대학생들 외에도 민초들이 한마음이 되어 거리로 뛰쳐나왔다. 시위대가 콜라병을 무기로 던졌다는 얘기가 돌았는데, 취재하면서 콜라병 차를 운전했다는 당사자가 나타나는 등 퍼즐이 조금씩 맞춰지고 있다. 김현지 피디는 “광주민주항쟁처럼 부마민주항쟁 이야기가 많이 알려지고, 다양한 이야기로 재생산되기를 바란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자꾸 밖으로 끄집어내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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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년, 마산>은 경남대 학생들외에도 파출소 순경, 중국집 배달원, 14살 중학생 등 이름 없는 모든 ‘아무개’들에게 빛을 비춘다. 이들이 이름을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수소문해 한명을 빼고 동의를 얻어 실명을 거론했다. 지난해 9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종영 이후 이름 없는 의병들을, 지난 7월 드라마 <녹두꽃> 종영 이후 민초들을 기리자는 움직임이 일었던 것과 비슷하다. 촛불로 세상을 바꾼 오늘의 우리를 연상케도 한다. 그런 점에서 40년 전 이야기지만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1981년, 1979년생인 두 피디는 태어나기도 전 이야기를 “빚을 갚는 심정으로 제작했다”고 고백했다.

<79년, 마산>에는 권력의 대변인을 자처했던 언론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내용도 등장한다. <마산 문화방송>에서 취재한 테이프를 보도부장이 중앙정보부로 빼돌리는 등 언론은 침묵했다. 당시 시위에 참여한 이들의 증언 중에는 “경찰서로 향했던 이들이 다시 마산 엠비시를 불태우러 가자고 외쳤다”는 내용도 있다. 김현지 피디는 “40년 전 일이라고 넘기기엔 2006년 입사한 저도 촛불시위나 세월호 현장에서 들었던 말이다. ‘엠비시 꺼져라’ ‘카메라 꺼라’…. 옛날 선배들은 왜 그랬지 하고 넘기기에는 마음의 짐이 너무 크다.”

<79년, 마산>은 <문화방송> 라디오 <격동 50년>을 만든 이영미 작가, 김종성·이상훈·유만준 성우 등이 뭉쳤다. 이번에는 배우 서갑숙도 함께한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으로 남포동에서 항쟁을 경험했지만 뭐가 뭔지 모른 채 최루탄에 눈물만 흘렸다는 성우이자 배우인 이상훈씨는 “이제야 그게 무엇이었는지 알게 됐다. 연기를 하면서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을까, 긴박했을까 마음이 먹먹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이제라도 부마민주항쟁을 기억해야 한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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