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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수)

청년들 주린 배 채워 주려 앞치마 두른 ‘열혈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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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로 목숨 잃은 연극인 죽음 계기
1인분 3000원짜리 김치찌개 식당 차려
하루 손님 80~90명… 2호점까지 생겨
좋은 취지에 공감한 사찰서 쌀 기부도
서울신문

청년식당 ‘문간’ 연 이문수 신부


“저는 김남길씨처럼 싸움을 잘 못하는데요?”

배우 김남길이 현실 속에 뛰어든 신부 역을 맡아 열연했던 드라마 ‘열혈사제’처럼 젊은이들의 영혼과 주린 배를 채워 주기 위해 식당을 연 신부가 있다. 서울신문이 8일 만난 이문수(45) 가브리엘 신부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2017년 12월 서울 성북구 정릉시장에 청년식당 ‘문간’을 열었다.

드라마 속 열혈사제는 억울하게 모함당한 사제 신부를 위해 주먹을 휘두르지만 이 신부는 젊은이들을 위해 앞치마를 두르고 밥과 김치찌개를 나른다. 글라렛선교수도회의 후원회를 담당하던 이 신부가 청년들을 위한 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4년 전 성북구 고시원에서 연극인 김운하씨가 생활고로 숨진 뒤 청년들을 돕자는 수녀들의 건의를 접하면서다.

이 신부는 노인을 위한 무료급식소는 있지만 청년을 위한 식당은 없다는 생각에 수도회에 청년식당을 제안했다. 식당 자체가 번거롭다고 반대할 줄 알았던 수도회는 오히려 “좋은 생각이니 직접 하라”며 승낙했고 이 신부는 여러 전문가를 만나 청년을 위한 식당 창업을 연구하게 됐다. 미사를 집전하던 신부가 창업 방법, 장사 잘하는 법 등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할 줄 아는 음식이라곤 라면밖에 없던 그는 세월호 유가족 상담사, 청년요리사, 탈북청년 그룹홈 운영자, 노량진 고시원 운영자 등 다양한 사람의 충고를 들었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밥이 아니라 시간이고, 시험 공부할 교재를 사기 위해 열 끼를 굶기도 한다”는 현실적 조언을 들은 이 신부는 굳이 장소와 메뉴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을 얻고 식당을 노량진이 아닌 수도회가 위치한 성북구에 열었다.

이 신부와 드라마 ‘열혈사제’ 주인공의 또 다른 공통점은 포도주보다는 소주를 즐겨 마신다는 것. 아무리 포도주값이 싸졌더라도 아직은 소주보다 비싸다며 누구와도 격의 없이 소주잔을 기울인다. 청년식당 문간의 인기에는 사람 좋은 웃음으로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가는 이 신부의 소탈함과 청년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열정이 크게 작용했다.

정릉시장 개천가 2층에 있는 문간은 이미 좋은 영향력을 확대 중이다. 청년을 돕고자 하는 이 신부의 뜻에 공감한 문간 2호점이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 생겨났다. 종교 대통합도 이뤘다. 성북구의 유명 사찰인 흥천사에서 쌀을 기부하자 이 신부는 직접 법회에 찾아가 불교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하루 평균 100명의 손님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지금은 80~90명이 찾는다. 청년들의 자존심을 생각해 1인분 3000원에 진한 맛의 김치찌개를 파는 이곳은 청년뿐 아니라 동네 주민들에게도 안식처가 되고 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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