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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위기의한글③] "울ㅈㅣ않ㅇr"…한글은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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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파괴 현상 늘어나…'바로타, 갓길' 한글 사용 노력도

[편집자주]한글은 세종대왕이 1446년에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창제해 반포한 문자다. 오늘날 우리가 한글을 사용하기까지 많은 위기가 있었다. 양반의 반대, 일제 강점기 등 무수한 한글 말살 정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뉴스1은 다가오는 573돌 한글날(10월9일)을 맞아 창제 시기부터 현재까지 한글의 위기를 살펴보고 세계 속으로 뻗어가는 한글의 위상을 조명하는 기획연재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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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문화큰잔치를 찾은 외국인 © News1 DB 박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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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한글은 창제 초기의 반대와 일제강점기의 핍박을 극복하고 우리 문자에서 세계인이 쓰는 문자로 받돋움하고 있다. 세종학당은 전 세계 60개국 180개소에서 한글을 보급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에서 한글의 사용 실태를 살펴보면 인터넷 시대를 맞아 한글파괴 현상과 무분별한 외래어 오남용으로 여전히 위기를 겪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한글파괴 현상은 젊은 층이나 홍보업계를 중심으로 시작됐으나 최근 방송계마저도 오락물을 중심으로 동참하고 있다. 정부는 각종 보도자료에서 무분별하게 신종 외래어를 남발하고 법령 등에 남아 있는 낯선 일본식 조어를 그대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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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전반에 퍼진 한글파괴 현상…공영방송마저 'ㅅrㄴr이는 울ㅈㅣ않ㅇr'

한글파괴 현상은 인터넷 시대를 맞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컴퓨터 인터넷 SNS나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주고받는 한글은 온통 축약되거나 뒤틀려 있다. 젊은층이나 불법콘텐츠 제공업체가 온라인상에서 쓰는 이런 문자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한글파괴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또한 생활 주변에 걸려있는 각종 현수막이나 광고물에서도 언어 파괴 현상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심지어 정부기관이 홍보를 위해 내건 표어에서 국적 불명의 단어·어휘들이 축약되거나 만들어져 마구 사용되고 있다.

방송도 예외는 아니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51조 3항에는 "방송은 바른 언어생활을 해치는 억양, 어조 및 비속어, 은어, 유행어, 조어, 반말 등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 방송사들이 이런 신조어 등을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막으로 무분별하게 쓰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 2일 흥미 유발을 위해 만든 조어 등을 그대로 송출한 10개 프로그램에 대해 행정지도인 권고를 의결했다. 방송언어 오·남용 사례를 살펴보면 한글파괴는 지상파나 종편, 케이블방송 등 가릴 것이 없었다.

공영방송인 한국방송(KBS)은 '해피투게더'에서 'ㅅrㄴr이는 울ㅈㅣ않ㅇr' 등을 자막으로 내보냈다. 일부 방송에서는 한글을 파괴한 조어를 자체적으로 만들기도 했다. 이런 조어는 '5마이 God'(영어 오 마이 갓) '억을한'(억울) 등이 대표적이다.

방통위는 "명백한 위반 사항은 아니지만 한글파괴, 일부 계층만 이해할 수 있는 불통 언어, 국적 불명의 언어 등 시청자 재미를 유발하려는 목적으로 대다수 시청자에게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 방송언어가 범람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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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광역대중교통체계인 간선급행버스(BRT) 정류장©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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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T 대 바로타…행정용어 선택에 세심함 더해야

정부 보도자료를 살펴보면 외래어·외국어를 습관적으로 남발한다. 스타트업, 클러스터, 프리존, 커스터마이징 등의 표현은 분명 한글이지만 영어를 모르면 이해하기 어렵다. 청와대 누리집도 '브리핑, 온에어, 메시지, 풀버전' 등 외래어가 가득할 정도다.

최근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은 국민 공모를 거쳐 세종시 광역대중교통체계인 간선급행버스(BRT)의 새 이름으로 '바로타'를 잠정 결정했다. '바로타'는 앞으로 관계 지자체와의 협의를 거쳐 2020년 상반기부터 디자인과 표기에 적용될 예정이다.

광역BRT는 시내버스보다 빠르게 운송하는 교통수단이지만 이용객이 영어식 표현을 직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행복청은 "'바로 탄다'라는 우리말 뜻을 쉽게 연상시키는 작품인 바로타는 BRT(Bus Rapid Transit)의 각 영어 단어 첫 글자도 연상돼 심사위원과 국민에게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한글 표현은 이처럼 영어나 외래어보다 직관적이며 이해하기 쉽지만 인식 부족으로 잘 쓰이지 않는다. 국어기본법에는 '공공기관 등의 공문서는 어문규범에 맞춰 한글로 작성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현실 행정에서는 무색할 정도다.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용어는 법령을 살펴보면 더 심각하다. 법령에는 일본 법률을 별 고민 없이 그대로 베낀 탓에 '수봉'(收捧), 양묘설비, 행정응원 등 해괴한 일본식 한자어가 지뢰처럼 박혀 있다.

법제처가 법률 용어를 공모한 결과 수봉은 징수, 양묘설비는 '닻 감는 장치', 행정응원은 '다른 관청의 협조요청에 응하는 행위'로 순화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법률용어를 쉽게 바뀌고 '바로타' 등 우리말로 바꾸려는 노력은 과거에도 있다. '갓길'이 대표적이다.

'갓길'은 19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일본식 표현 '노견'(路肩)이라고 불렸다. 당시 이어령 문화부장관은 국어연구원에 지시해 '노견'을 대신하는 말로 '갓길, 곁길, 길섶'을 제안했고 정례 국무회에서 '갓길'이 최종 확정됐다.

이어령 전 장관은 이후 인터뷰에서 "1000번의 기고로도 못 고친 것을 1번의 문화행정으로 이뤄냈다"며 "지금도 길 다니다 혼자 뿌듯하곤 한다"고도 밝혔다.

문자는 해당 국가나 집단의 정신문화를 반영하는 사회적 약속이다. 한글이 파괴되고 마구잡이로 쓰이면 세대 간·집단 간·지역 간·성별 간 소통의 단절을 초래할 수도 있다. 사회의 통합을 저해하는 한글파괴를 그냥 방치할 수 없는 이유다.

뉴스1

19일 세종시 한 식당에서 김용삼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행정기관 국어책임관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이번 간담회는 한글날을 앞두고 국어책임관들을 격려하고 쉬운 우리말 쓰기와 전문용어표준화협의회 활성화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 마련됐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2019.9.19/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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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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