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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건축학도들의 성지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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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효 아키텍트-4]얼마 전 제11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가 이화여대 ECC(Ewha Campus Complex)에서 열렸다. ECC는 이화여대 정문에서 우측으로 15도 방향에 위치한 국내 최대의 지하 캠퍼스다.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 1953~)가 설계해 2008년 완공됐다. 웅장한 계곡을 연상시키며 자연과 첨단이 조화된 건축물로 이화여대는 물론이고 서울의 랜드마크로도 손색이 없다. ECC 건물은 페로아키텍처 웹사이트에도 대표작으로 올라와 있다.

루드비히 미스 반데어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 1886~1969, 이하 '미스'로 약칭)도 대학 캠퍼스 건물을 설계했다. 1938년 52세의 영어도 할 줄 모르는 미스가 미국 시카고 일리노이 공과대학(IIT)의 건축학과장을 맡으면서 받은 조건은 캠퍼스 설계였다. 건축대학 건물인 크라운홀은 시카고 근교 판스워스(farnsworth) 하우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1950년경에 구상하고 1956년에 준공돼 판스워스와 함께 미니멀리즘 건축의 정수를 보여준다. 사회주의 국제양식에서 기원한 미스의 대학 건축물은 미국 현대 건축의 양식으로 받아들여졌다.

ECC에서 영화 '바르셀로나 파빌리온'(barcelona pavilion 1929)을 감상했다. 이번 영화제의 개막작이다. 상영에 앞서 천장환 경희대 건축학과 교수가 미스의 건축 세계에 대해 설명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MWC(Mobile World Congress) 개최로 유명하다.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로, '모바일 올림픽'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파빌리온은 1929년 바르셀로나 만국박람회에서 선보인 독일관 구역의 국가안내관이다. 미스는 설계를 주문받고 파빌리온이 무슨 뜻인지 물어본다. '파빌리온'은 한시적인 이벤트를 위한 임시 구조물 혹은 일종의 가설 건물이다.

파빌리온은 지붕, 기둥 등 최소의 요소만으로 건축을 구성하고, 자유로운 평면 건물의 외벽은 유리로 마감해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사라지고, 부분적으로 세운 벽은 공간을 완전히 구획하지 않는다. 공간이 갇혀 있지 않고 흐른다. 한쪽에서 들어와서 그냥 나간다. 마치 넓은 복도가 중첩된 것처럼, 반사 유리 등을 이용해 사람들의 발길을 이곳저곳으로 역동적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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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파빌리온 전면/사진=미스 반 데어 로에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https://miesbc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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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 본 하얀 평지붕(floating roof), 녹색 대리석 벽체, 크롬 피니시 십자 기둥, 트래버틴 대리석 바닥과 벽체, 두 개의 연못, 비대칭 공간에서 시선의 이동에 따라 달라지는 공간분할 형상은 안과 밖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마치 몬드리안의 추상화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게오르그 콜베(Georg Kolbe, 1877~1947)의 조각상 '새벽'(Der Morgen)은 건물 외벽과 이격해서 설치됐다.

그는 '적을수록 낫다(less is more)'는 경구로도 유명하다. 이 건물은 '레스(less)'의 의미를 새롭게 한다. '레스'는 덜어내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고도로 집약돼 최후까지 남은 것이다. 바닥과 기둥과 벽과 지붕이 모두 완벽하게 정확한 위치에 있다. 한 치도 더 덜어낼 것 없는 독일인의 합리성이 결국 서정성을 낳는다. 미스는 파빌리온에서 디테일의 완벽함을 추구했기에 '신은 디테일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s)는 경구도 여기서 나왔다.

파빌리온을 방문할 스페인 국왕 부부를 위해 바르셀로나 체어와 스툴(stool)도 만들었다. 크롬 피니시의 X자형 프레임을 적용했다. 바우하우스 교장 출신인 미스의 기능에 충실한 디자인 철학이 그 연장선에 있다. 씌우기(upholstery)용 가죽은 릴리 라이히(Lily Reich, 1885~1947)와 공동 작업했다. 박람회를 위해 디자인됐으나, 체코 브르노에 있는 미스의 투겐트하트 주택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현재는 놀(Knoll)에서 제작 판매한다.

릴리 라이히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다. 미스의 연인으로도 알려진다. 릴리 라이히는 미스의 드로잉 3000여 점과 자신의 드로잉 900여 점을 동부 독일 친구의 집에 옮겨놓는다. 이 작품들은 1964년 시골 창고에서 발견되고 미스와 모마(MOMA)의 노력으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된다. 미스는 모든 자료를 회고전을 가졌던 MOMA에 기증한다. 당시 건축계는 여성의 업적을 잘 인정하지 않았다. 베를린 시절 미스의 작업 중 상당 부분이 릴리 리이히의 도움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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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파빌리온 측면/사진=미스 반 데어 로에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https://miesbc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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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파빌리온의 복원은 많은 논란을 낳았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은 아이러니하지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명성이 높았다. 평면도를 미국 모마에서 가져왔다. 복원 과정에서 석공이 역할이 중요했다. 특히 붉은색의 오가닉 대리석을 구해야 했다. 석공은 이집트 등을 찾아다니다 리비아의 폐쇄된 광산에서 오가닉을 가져온다. 스페인 지역 건축가들의 열정과 노력으로 1986년에 당시와 똑같은 자리에 복원됐다. 위치는 황영조의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우승 때문에 알려진 몬주익 언덕 기슭이다. 이 작품은 세계 건축학도들의 성지와 같은 곳이다.

미스는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 이미 필립 존슨(Philip Johnson, 1906~2006)과 교류가 있었다. 존슨은 건축 이론가로 출발한 건축가이다. 존슨은 시그램 빌딩(Seagram Building)의 인테리어 디자인에 일부 관여했다.

미스 건축의 특징은 터를 중요하게 본다는 점이다. 파빌리온이나 시그램이나 모두 주변의 환경과 배경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게 뚜렷하게 엿보인다. 또한 '쉬어감'이 중요하다. 천장환은 미스 건축을 가장 잘 상징하는 건물로 시그램 빌딩을 꼽는다. 디테일의 완벽함과 미학적 측면 때문이다. 미스는 당시 법규가 허용하는 많은 면적을 포기하고 거리에서 27m나 뒤로 물러난 곳에 건물을 위치시켰고 건물 앞에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광장이 조성됐다.

[프리랜서 효효]

※참고=영화 '바르셀로나 파빌리온:미스의 숨결을 따라서(Mies on Scene. Barcelona in Two Acts, 2018), 웹사이트 www.perraultarchitecture.com, 미스반데어로에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mies van der rohe at barcelona pavilion 1929, 박영우 건축가), 건축가 황준 블로그(juneeeeeee), 웹사이트 miesbcn.com, 천장환 인터뷰(교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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