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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이코노 서가(書架)] 자본 보호 시스템인 회사법, 디지털 시대 맞게 재설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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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오늘날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핵심인 '자본'이란 대체 무엇일까? 컬럼비아 로스쿨의 캐서리나 피스토어 교수는 저서 '자본 코드'에서 자본의 본질은 기존의 통념처럼 화폐 또는 유형·무형 자산 자체가 아니라고 본다. 자본은 바로 법적 실체다. 저자는 오늘날 부동산, 법인, 지식재산 관련 법령이 자리 잡기까지 기나긴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그것이 어떻게 시장을 움직이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데에 기여했는가를 분석했다.

거대한 변화의 시초는 16세기 영국에서 진행된 1차 인클로저 운동이었다. 토지를 선점 경작하던 농민들과 새로 진입한 점유자 사이에서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국가가 강제력으로 개인 소유권을 규정하는 법이 정착되기에 이른다. 서구 자본주의 경제의 성장은 바로 이런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 19세기에는 회사법에서 자연인이 아닌 법인에 대한 규정이 분명해지면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궤도에 오르게 됐다. 영국의 1844년 회사법은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주주의 자발적인 결성만으로 회사를 설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862년 개정된 회사법에서는 파산시 주주의 유한책임만을 인정하게 됐고, 이후 현대 기업 사회가 급성장했다.

저자는 서구의 회사법 체계는 주주에게만 유독 특권을 부여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회사의 모든 자산에 대한 선점권(priority), 주주의 사망이나 교체에 영향을 받지 않고 그 권리가 유지되는 지속성(durability), 전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구애받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보편성(universality), 그리고 언제든지 현금화가 가능한 전환성(convertibility)이 바로 그 특권의 내용이다.

2008년 금융 위기도 바로 이 회사의 특권이 교묘하게 남용된 데에 기인한다. 1968년 미국 연방주택법(Federal Housing Act) 도입 이후 모기지 대출 자산들을 분할 통합해서 회사 형태로 변형시킨 상품이 속속 등장한 것이 화근이었다. 서류상의 회사가 난무하면서 투자의 실체는 사라졌다. 다만 시민의 희생 속에서 오직 자본만이 지속적으로 이익을 수취해갔다.

20세기에 이 법적 보호 시스템은 토지와 법인에 국한하지 않고, 무형의 노하우인 지식재산과 영업 비밀에까지 확산됐다. 급기야 21세기에는 2차 인클로저 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회사는 토지가 아니라 데이터에 거대한 담장을 치고 있다. 기존 상법이 규정해온 주소지, 이사회, 자본금, 사무실 등을 갖추어야 하는 회사 대신에 암호화폐 기반의 디지털 법인체가 등장하기까지 했다. 변화한 환경에서 낡은 시대의 법률 체계를 재설계하지 않으면 공정한 자본주의의 지속은 어렵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송경모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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