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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직장 없는 아픔 알기에… 불황에 노조도 협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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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업도 쌍용자동차만큼 '직장이 없는 아픔'을 겪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회사가 있어야 노동자가 일할 자리가 있습니다. 경영진과 회사를 적(敵)으로 두고, 노조가 투쟁만 외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정일권 쌍용차 노조위원장은 "회사 경영이 안정돼야 고용도 가능하다는 노조원들의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에 비상경영에 동참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쌍용차 노조는 지난달 순환 휴직과 22개 사원 복지 항목 축소를 골자로 한 사측의 비상경영안을 받아들였다. 8월엔 임금 협상을 파업 없이 마쳐, '10년 연속 임금 협상 무분규 합의' 기록도 세웠다.

7일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만난 정 위원장은 "휴직과 복지 축소에 반대하는 조합원도 소수 있었지만, '10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인 회사의 위기부터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라는 사측 입장을 직원 대부분이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현재 파업과 협상을 반복하는 한국GM노조, 올해 5월까지 8개월 동안 총 62차례 부분 파업을 벌여온 르노삼성노조 등 파업을 앞세우는 다른 국내 자동차 노조와 대비된다.

◇10년 전 파업 통해 '직장의 소중함' 깨달아

"10년 전 노조는 무조건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할 생각만 했습니다. 회사가 적자인지, 흑자인지 고려하지 않았죠. 결국 눈앞에서 2000명이 넘는 동료가 회사를 떠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선비즈

정일권 쌍용차 노조위원장은 7일 평택 공장 사무실에서 “노조가 회사를 상대로 투쟁만 외치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쌍용차 노조는 지난달 순환 휴직과 22개 사원 복지 항목 축소를 골자로 한 사측의 비상 경영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회사 경영을 위해 노조원도 적극적으로 양보하고, 희생을 감수해야 일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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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위원장은 2007년과 2008년 노조위원장과 지부장을 지냈다. 당시 쌍용차 노조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였다. 2009년 파업 때 그도 앞장서서 '투쟁'을 외쳤다. 당시 쌍용차는 구조조정으로 2400여명의 직원을 내보냈고, 우여곡절 끝에 2011년 인도 마힌드라그룹에 인수됐다. 그는 "그때 해고됐다 복직한 동료, 남아 있던 동료들 모두 하나같이 '직장과 회사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말한다"며 "노조원도 기업의 생존을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일자리를 지켜낼 수 있다는 의식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쌍용차 노조는 2009년 파업 이후 민노총을 탈퇴했다.

이번 비상경영안 동참도 노조원들의 변화된 의식과 공감대에서 비롯됐다. 정 위원장은 "10년 전과 비교하면 노조원들의 분위기가 천지(天地) 차이"라고 말했다. "과거엔 생산 직무를 바꾸는 전환 배치만 갖고도 노조가 격렬히 반대했습니다. 지금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설명하면 조합원 대부분이 이를 수긍합니다. 과거엔 생각도 못 할 일이죠." 경영 정상화라면 노조원들도 소매를 걷어붙일 정도로 노조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자동차 불황에 노조도 협력해야

정 위원장은 전 세계적인 불황과 구조조정을 겪는 자동차 업계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GM을 비롯한 해외 기업들도 구조조정을 하고 있고, 차 수요가 감소하는 등 글로벌 업계 모두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외국 대주주가 많은 한국 자동차 업계는 구조조정에 더 취약하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를 제외한 쌍용, 한국GM, 르노삼성 모두 해외 기업들이 대주주로 투자한 회사다.

"해외 대주주가 있는 기업은 순수 국내 기업과 다른 한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이 한계를 뚫고 해외 대주주들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사 협력'을 바탕으로 성과를 내야 합니다. 노사가 싸우고, 안정적인 생산이 안 된다면 어떤 대주주가 투자를 약속하고, 고용을 보장해 주겠습니까."

노조가 선제적으로 회사 경영에 협력해야 사측의 투자와 고용 보장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위원장은 “조만간 이사회를 통해 마힌드라 경영진을 만나기로 날짜를 잡았다”며 “이제는 노조의 양보만큼, 사측이 투자와 실적을 통해 화답해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일터가 목표”

그는 내연기관의 시대가 저물고 전기차 등 친환경차가 중심이 될 미래 자동차 시대에는 노동자, 노조의 역할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미래 자동차는 부품이 절반 이상 줄어들고, 생산이 자동화되면서 산업 전체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며 “이런 흐름에 발맞춰 노조도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 자동차는 부품이 줄어들고 생산이 편리해지는 만큼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가 될 것입니다. 결국 노동자는 업무 변경이나 고용 방식 변경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엔진 제조·금속 가공 등 숙련 기술 전문성을 더욱 키워야 산업 전체 일자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그는 쌍용차 전 직원 꿈은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드는 것이라 했다. 다시는 2009년의 아픔이 없도록, ‘잘나가는 쌍용차’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금도 현장 근로자들은 먼저 품질 개선 아이디어를 낼 정도로 회사 경영 정상화에 대한 열의가 뜨겁다고 한다. 그는 인터뷰가 끝날 무렵,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제 쌍용차는 국민이 기억하는 10년 전 그때 그 노조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1순위 목표는 최고 품질 차를 만드는 겁니다. 국민이 쌍용차를 많이 사주셔서 쌍용차와 한국 자동차 산업 경쟁력에 힘을 보태주시길 바랍니다.”





평택=임경업 기자(up@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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