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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294] 서구인 환상 속 ‘술탄의 여자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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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프랑스 화가 도미니크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1780~1867)의 ‘그랑드 오달리스크’를 찾으려면 성인 인증을 해야 한다. 노출이 과한 모양이다. 21세기 기준으로도 선정적인 이 그림이 19세기 초 대대적 공개 행사인 파리 살롱에 전시됐을 때 어땠을까. 평론가들은 물론이고 일반 관객들도 맹비난을 퍼붓기는 했지만 이유가 달랐다. 비스듬히 누워 유혹하듯 그림 밖을 내다보는 관능적 여인의 누드화는 서양 미술사에 수도 없이 있었으니 크게 특이할 게 없었다. 당시 대중은 오히려 여인의 목이 지나치게 길고 두 다리 위치가 어긋나 있으며 늘어뜨린 팔은 뼈가 없이 흐느적거리는 등 몸 전체가 해부학적으로 정확지 못한 데 분통을 터뜨렸다.

조선일보

도미니크 앵그르, 그랑드 오달리스크, 1814년, 캔버스에 유채, 91x162cm, 파리 루브르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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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달리스크’는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궁정 시녀 ‘오달릭’을 프랑스식으로 읽은 말이다. 그들은 후궁들의 시중을 들었지만 이슬람 세계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을 펼쳤던 19세기 유럽인들의 환상 속에서는 이슬람의 제왕, 술탄의 쾌락을 위해 봉사하는 아름다운 여자 노예로 변모했다. 문화권을 건너오며 발음만 달라진 게 아니라 의미도 달라졌던 것이다. 화가 앵그르는 유럽인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튀르크 제국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다. 그는 터번과 깃털 부채, 향로 등 이국적 물건 가운데 자기가 존경하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 라파엘로풍의 전형적 유럽 미인을 눕혀 놨다. 말하자면 앵그르의 오달리스크는 현실 세계에는 없고, 다만 서구인들의 환상 속에만 살아 있던 가상 존재였던 것. 하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왜곡된 이 여인의 정체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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