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규
담을 넘어 들어오더니 밤나무를 타고 올라가
나뭇가지 끝에 연두색 호박을 매달아 놓았다
호박은 공중에서 하루하루가 다르게 커졌다
밖에서 담을 넘어 들어왔으니
옆집에서 심은 것은 아니지…
그러니까 긴 골프우산 손잡이를 담 너머로 뻗쳐서
호박을 끌어다가 따 먹을 수도 있는 거야
하지만 누구에게 들키지 않는다 해도
시쳇말로 다툼의 여지는 있겠지 이를테면
옆집 영감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피할 수 없을 걸
요즘도 호박 도둑이
있는 모양이여…
늦장마 지나가고 매미와 풀벌레 소리 요란한
오늘도 옆집 밤나무 가지에 매달린 호박을
바라본다 따먹고 싶은 욕심일랑
몽땅 버리고
짙푸르게 익어가는 호박 그 자체만 바라볼 수는 없을까
가을이 가버리기 전에 그렇게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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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 이항복이 생각나는 시이다.
시인은 뒷산에서 자란 호박 덩굴이 옆집 담을 넘어 들어오더니
밤나무를 타고 올라가 나뭇가지 끝에 연두색 호박을 매달아 놓은 걸 바라본다.
시인은 무럭무럭 자라는 호박을 보며 갈등한다.
옆집에서 심은 것이 아니니 담 너머로 긴 골프우산 손잡이를 뻗쳐서
호박을 따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공자는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부른다고 했다.
건전한 욕망은 아무리 많이 가져도 부족하지만,
그 욕망이 도를 넘어선 과욕일 때는 문제가 심각하다.
탐욕으로 삶이 망가지는 사람들을 우리는 수없이 보았다.
우리는 욕심을 버리고 짙푸르게 익어가는 호박 그 자체만을 바라보자.
이 가을이 가버리기 전에.
박미산 시인, 그림=원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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