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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조국의 성소수자 인식 왜 안 따지나” “해고노동자 위한 촛불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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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도 서초동도 아닌 #나는 나의 깃발을 들겠습니다 - 청년의 목소리 ②

경향신문

‘나는 나의 깃발을 들겠습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청년들이 ‘광화문과 서초동 사이’ 깃발을 세우려는 곳은 지역민, 성소수자, 노동자 곁이다. 사진은 고공농성 중인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위 사진), 5월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자(가운데), 석탄발전 중단을 촉구하는 의미로 방독면을 착용한 녹색연합 활동가. 김창길·권도현 기자 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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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빛나씨는 경남 밀양에서 나고 자랐다. 밀양에 산다. 고향 밀양은 2018년 한국고용정보원이 꼽은 ‘소멸위험’ 지역이다. 외고나 자사고, 과학고는커녕 하나 있는 대학교마저 학생이 줄어 폐교될 것이라는 말이 떠돈다. 곽씨는 최근 삼남지역(충청도·경상도·전라도) 청년들과 만나 ‘지역 소멸’ 상황에서 청년 역할을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핵발전소·송전탑 등

‘기피시설’ 지역에 떠밀고

지역 의제 무관심한 세상


석 달째 모든 언론의 관심이 ‘조국 사태’에 쏠려 있다. 지역 청년들에게 “조국 사태는 중요하지 않은 의제”라고 곽씨는 말한다. 그에겐 “밀양 송전탑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신문에 한 줄이라도 나기 위해 지난 8년간 새벽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야 했던” 구조를 바꾸는 일이 더 중요하다. “공해시설이나 핵발전소, 송전탑은 지역에 버려지고, 지역의 중요한 의제는 빠르게 잊혀지는 모습”을 보며 그는 서초동도 광화문도 아닌 밀양에서 자신만의 깃발을 들겠다고 다짐한다.

경향신문은 6~7일 ‘나는 나의 깃발을 들겠습니다’라는 주제로 청년 10명의 릴레이 기고를 경향신문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7일에는 밀양 송전탑 활동가인 곽씨를 비롯해 성소수자 레마씨, 정당인 신지예씨, 기후위기 청소년조직가 김보림씨, 우리동네연구소 대표 안소정씨의 글을 실었다. 이들은 조국 사태에 공감하지 못하는 ‘지역민’ ‘성소수자’ ‘노동자’가 있는 곳에 깃발을 세우겠다고 했다.

“근무 중 동성애에 대해서는 보다 강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휴가 중에까지 형사 제재를 하는 것은 과한 게 아닌가 한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달 6일 청문회에서 군형법 92조 6항에 대한 입장을 묻는 박지원 무소속 의원의 질의에 이같이 답했다. 이 조항은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동성 간 성관계를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성소수자임이 드러난 군인들이 이 조항을 근거로 형사재판에 넘겨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권침해 논란이 이어졌다.

레마씨는 “청문회에 있던 누구도 그들의 폭력적인 혐오표현을 제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느꼈다고 했다. 2011년 해당 조항 철폐와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던 ‘법학자’ 조국은 8년 뒤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되어 차별 발언에 가담하는 주체가 됐다. 레마씨는 “언제까지 이 사회에서 성소수자로 사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조국을 향해 공정이 아닌 평등을 외치는 집회가 서초동에도, 광화문에도, 심지어는 내가 속한 대학교에도 없다는 사실은 참으로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공정 아닌 평등 외칠 곳은

없다는 사실 개탄스러워


이들은 ‘검찰개혁’과 ‘조국수호’를 동일선상에 놓는 구호에도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안소정씨는 지난 5일 서초동 집회에 200만명이 모였다는 기사를 읽고 부당해고 투쟁 과정에서 기소당한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떠올렸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권력의 힘을 따라 움직이는 서초동의 검사와 판사들을 풍자하는 노래를 몇 년이나 불렀는데…. 조국 장관을 계기로 한 검찰개혁을 위해서는 200만이나 모이면서, 바로 나 자신과 동일시될 수 있는 노동자의 편에서 검찰개혁을 이야기할 수는 없는 걸까.”

그는 “가족을 위해 검찰과 통화하는 조 장관 대신 강남역에서 고공농성 중인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를 위해 촛불을 들겠다”고 했다. “법에 따라 공정하게 작동해야 할 수많은 기관들이 권력의 힘에 따라 움직일 때 더불어민주당 소속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든 자유한국당 소속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든, 청와대는 가만히 있었다”며 “서초동의 촛불에도 광화문의 촛불에도 냉소적인 시각을 거둘 수 없다”고 했다.

곽씨도 “검찰개혁을 해야 진상규명을 할 수 있다”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세월호 참사같이 “진상규명을 미뤄두거나 면죄부를 줬던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고 기소하는 것이야말로 검찰개혁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사건을 이야기하지 않고 ‘조국 대 검찰’의 구도로만 검찰개혁을 이야기한다면 “개혁은 우리와 연결된 이야기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서초동과 광화문이 아닌 곳에서 자신만의 깃발을 들겠다는 청년 10명의 목소리는 때로 초라해 보인다. 새로운 정의를 바라는 열망은 가볍지 않다. 지난 27일 ‘청소년기후행동’ 소속으로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에 나섰던 김보림씨는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서인지 우리 사회는 아직도 기후변화로 인한 생존의 위기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일선 학교에는 미세먼지가 심각하다며 공기청정기를 보급하면서, 강원도 삼척에는 또 다른 화력발전소를 짓는다. 김씨는 “내가 하는 일은 나의 미래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발버둥”이라며 “기후위기로부터 모두의 생존을 위한 깃발을 들겠다”고 했다.

우리 깃발은 조국 찬반 아닌

조국 이후를 고민하자는 것


정당인 신지예씨는 “문제는 시민들에게 두 개의 가짜 선택지만 내미는 한국 정치”라고 말한다. 그는 “지금의 정치는 조국 사태를 통해 드러난 사법개혁, 불평등, 입시부터 고용까지 연동된 교육 문제의 해결에는 관심 없다. 조국 찬반이 아닌 조국 이후의 대한민국을 논의하자고 깃발을 들겠다”고 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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