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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당신 안의 무엇이 ‘너는 안 된다’고 말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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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책읽는사회문화재단 공동기획] 지은이와 함께 읽는 사람들

정여울-‘아트인문학여행자들’, ‘탐구생활자’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작품을 통해 인생과 예술의 의미 되짚어

”내 안의 환하고 찬란한 빛과 그림자 동시에 발견하는 일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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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7일 저녁,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느티로 ‘좋은 날의 책방’에 퇴근길 정체를 뚫고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책들이 한 권 한 권 소중하게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서점 한켠에 테이블이 마련돼 있었다. 이날 정여울 작가의 <빈센트 나의 빈센트>(21세기북스)를 함께 읽고 온 12명의 사람은 독서 동아리 ‘탐구생활자’와 ‘아트인문학여행자들’ 회원들이었다.

이 서점을 거점으로 활동 중인 ‘북클럽 탐구생활자’는 3년 전 시작한 30~40대 직장인 위주의 독서 동아리로, 건축·문학·미술·음악 등 우리 삶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영역들의 핵심 원리를 탐구한다. 이들은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의 <황금가지> 등 세계적 권위를 가진 스테디셀러들을 촘촘하게 읽고 비평을 해왔다.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싸게 살 수도 있지만 일부러 동네 책방에 책을 주문하고, 바쁜 시간을 쪼개 매주 화요일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대표 이주연씨는 “독서력이 있더라도 혼자 읽기엔 버거운 책들, 고전이라며 자꾸 회자되지만 읽지 못해 숙제처럼 남아있는 책들을 주로 본다”며 “고전이라 칭하는 책들이 진정 고전의 자격이 있는지,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진지하게 토론해왔다”고 말했다. 회원 강민지씨는 “1년 반 정도 모임을 하고 나니 세상 돌아가는 원리와 눈에 안 보였던 것을 알게 되고 눈이 트이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3월 시작한 독서 동아리 ‘아트인문학여행자들’은 전문 예술가와 예술 강사, 예술에 관심 많은 독서인들로 구성됐다. 이 모임은 미술책을 주로 읽으며 어려운 미술사 어휘들과 계보를 차근차근 배워나가고 있다. 모임의 연장자이자 현역 화가인 박정우씨는 “나이를 묻지 말라”며 웃었다. “우리 서로 나이를 알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영어 이름을 부르면서 평등한 관계를 유지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모임 대표 고영신씨는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완독했을 때 성취감을 느꼈고, 뒤섞여있던 미술사의 흐름들이 조금씩 머릿속에서 자리를 잡게 되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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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작가는 이날 여행, 문학, 심리학 이야기를 넘나들면서 빈센트 반 고흐와 현대인의 삶을 연결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올 3월 발간된 <빈센트 나의 빈센트>는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등 고흐가 머물던 지역을 찾아다닌 10년간의 여행 이야기를 담았다. 정 작가는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을 버려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던 29살 즈음, 빈센트를 간절하게 만나고 싶어서 그의 그림을 보러 미국으로 떠났다”고 말했다.

“나의 모습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두 개 단어가 블리스(Bliss)와 섀도(Shadow)예요. 블리스는 자기 안에 가장 환한 빛, 섀도는 가장 어두운 그림자를 가리키죠. 그것을 하는 동안 모든 것을 다 잊을 수 있는 것, 지극히 내적인 희열, 남들이 뭐라 해도 나는 좋은 그것이 바로 블리스고, 그것을 따라가는 일이 내 본질을 찾는 과정이지 않을까요.”

정 작가는 고흐가 극단적 상황에서도 자기 안의 환한 ‘블리스’를 찾아냈고, 그 빛을 부단히 좇아간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흔히 고흐를 상처가 많은 인물로만 환원하고 그의 병증이 훌륭한 예술품을 낳은 것처럼 말하지만 그에 동의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고흐는 에밀 졸라를 가장 좋아했던 엄청난 독서가였고 철학자이자 위대한 독학자였다”는 것이다. “그는 르네상스맨 같은 재능을 갖고 있었어요.”

<빈센트…>를 두 번이나 읽었다는 박종선씨는 “뉴욕에 가서 고흐의 그림을 처음 만나 펑펑 울었던, 그때 소용돌이쳤던 감정이 지금도 살아있는지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정 작가는 “그 느낌이 살아있도록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라며 이탈리아의 화가 파올로 우첼로(1397~1475)의 작품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1470)을 보여주었다. 그림에 등장하는 기사, 용, 여왕이 모두 자기 자신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정 작가는 “화면 속의 용이 자기 자신을 가로막는 부정적인 방어기제”라며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가도 나를 가로막는 용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면서 그것을 잠재우는 싸움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여러분도 자기 안에 무엇이 ‘너는 안 된다’고 하는지 스스로 물어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정우 화백은 미국 유학 시절 일화를 들려주었다. 그는 “나 역시 한때는 자취방에서 고흐처럼 정신착란이라도 달라고 기도할 정도로 절박했던 적이 있었다”며 “고흐의 자화상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람의 눈을 발견하곤 ‘예술가는 죽는 게 아니라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성원씨는 “심리학 얘기까지 듣다 보니, 하나로 합쳐지는 큰 강의를 들은 것 같다. 다른 시각에서 고흐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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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씨는 “나이가 들면서 ‘내가 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때, 동시에 나는 진부한 인간이 되었다고도 느낀다”며 “점점 블리스라고 할 만한 것을 캐내기 힘들어질 때, 잠들어있는 나를 깨워줄 만한 무언가를 작가님은 만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정 작가는 “늘 나의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예전의 그 마음을 상기시켜주는 존재들이 주변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책만 있으면 행복해지는 사람이었어요. 독서 모임도 하나의 ‘블리스’가 될 수 있어요. 줄 치면 잊어버리지만, 말하면 잊지 않아요. 함께 읽고 친구한테라도 수다를 떨면 그것이 바로 작은 북클럽이 되지 않을까요? 책을 읽고 말하고 함께 나눈다는 것, 그것이 책을 실천하고 살아내는 길인 것 같아요.”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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