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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해시브라운처럼 바삭한 감자전… 방아잎·땡초 넣은 추억의 방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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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정동현의 pick] 전집편

서울 상암동 '차림'

조선일보

서울 상암동 '차림'의 감자전(앞)과 방아전. /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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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꼭대기에 있던 해군기지에서 부침개를 부쳤다. 부대원은 장교까지 포함해 70명 남짓이었다. 1인당 한 장씩 먹이겠다는 게 주방 '어머니'의 계획이었다. 부대원들이 어머니라 부르던 주방 아주머니는 주임원사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다. 절 입구 사천왕처럼 사납게 화장한 아주머니는 주방에서 일하는 병사들을 호되게 다뤘다.

"반죽을 계속 저어. 그래야 전이 쫀득쫀득한 맛이 있지." 나는 설거지를 하느라 굵어진 전완근으로 반죽을 묵묵히 저었다. 밀가루에 있는 글루텐은 충격을 줄수록, 그러니까 반죽을 젓거나 치댈수록 탄성이 생긴다. 아주머니는 떡처럼 쫄깃한 식감을 원했다. '부침개는 바삭해야 제 맛'이란 신조를 가졌던 나는 못 이기는 척 반죽을 젓고 또 저었다. 기름을 잘 먹은 검은 프라이팬에 반죽을 한 국자 척 올리자 치익치익 소리를 냈다. 파와 양파 몇 개가 들어간 별것 없는 부침개였다. 스테인리스 식판 위에 부침개 하나가 넘치게 올라갔다.

병사들은 아주머니가 원한 대로 부침개를 떡처럼 뜯어 먹었다. 달달한 양파가 살짝 아삭하게 씹혔다. 간간이 씹히는 돼지비계가 고소한 맛을 냈다. 주방 가득 기름진 냄새가 가득했고 아무도 부침개를 남기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주방 한쪽 작은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식은 부침개를 손으로 찢어 먹었다. 두꺼운 화장에도 아주머니의 잔잔한 웃음은 감춰지지 않았다. 나는 그 옆에 앉아 식은 부침개를 주워 먹었다. 그리고 어릴 적 집에서 어머니가 부쳐주던, 대학교 동기들과 떠들며 먹던 부침개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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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신입생 시절 '녹두거리'라고 부르던 서울 신림동 먹자골목에서도 맨 귀퉁이에 있는 '동학'이란 민속주점에 자주 다녔다. 황토를 칠해 마감한 실내에서 볏단으로 짠 멍석에 앉아 그래 봤자 스무 살 갓 넘은 선배들의 조언과 동기들의 별것 아닌 고민을 들으며 동동주를 마셨다. '나는 그를 좋아하는데 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며 누구는 울고 누구는 휴지를 빌려주다가도 김치전이 나오면 이야기가 뚝 끊겼다. 신맛이 팍 도는 김치전을 찢고 입에 넣느라 울음이 멈추고 고민이 사라졌다. 배추 겉절이에 김치전을 올려 먹기도 했다. 야들야들한 돼지 수육까지 곁들이면 우리는 농부가 된 것처럼 동동주를 입에 붓고 안주를 먹어댔다.

나이가 들어서는 을지로 '원조녹두'를 자주 다녔다. 떨어질 것 같은 옛 간판을 달고 있는 이 집에 가면 전 부치는 것도 힘겨워 보이는 노인이 주방을 지키고 있다. 사람들은 주문 넣는 것도 미안해하며 스스로 냉장고 문을 열어 소주나 맥주 같은 것을 가져다 먹기도 한다. 널따란 철판에 부치는 해물파전은 달걀 물을 부어가며 부쳐 낸지라 노란색이 밝게 퍼져 있다. 쪽파를 넉넉히 올리고 오징어·홍합 같은 해산물이 그 사이사이 박혔다. 고기를 잘게 다져 부친 동그랑땡, 신김치가 박힌 녹두전도 좋지만 해산물과 쪽파가 어우러진 해물파전 없이는 이 집 상에 앉아 본 적이 없다.

조금 더 공을 들인 부침개를 찾는다면 상암동 '차림'에 가보는 편이 좋다. 디지털미디어시티역 근처 먹자골목 2층에 있는 이 식당은 한식 일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메뉴가 다양하다. 핀셋으로 일일이 뼈를 발라낸다는 '코다리조림'은 주인장 고생한 티가 역력한 음식이다. 채소와 고기를 넣고 비벼낸 궁중잡채는 처가에 온 것처럼 양이 많고 정성이 듬뿍 들었다.

이 집의 감자전과 방아부침개를 보면 주인장의 성품이 그대로 드러난다. 마치 서양의 해시브라운처럼 바삭한 감자전은 감자를 아주 얇게 채를 쳐서 부쳐 냈는데 그 식감이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한 종류다. 홍합, 굴, 조개, 오징어 등을 칼로 잘게 다져서 경상도에서 땡초라고 부르는 청양고추와 방아 잎을 넣어 부친 방아전은 옛날 친구 집에서 먹던 맛이 난다. 어린 손님이 부침개를 좋아한다 하여 친구 어머니가 달그락달그락 작은 주방을 들썩이며 부쳐낸 부침개, 부침개를 나눠 먹던 친구들, 그들과 보낸 시간과 시간. 문득 하늘을 보면 푸름만 깊다.

[정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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