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 갖춰지면 전시 재개” 권고하며 ‘SNS 전파 제한’ 등 조건 내걸기도
지난달 3일 일본 아이치(愛知)현 나고야(名古屋)시 아이치현문화예술센터 8층에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의 모습. '표현의 부자유전' 팸플릿이 손에 들려 있다. 그러나 아이치 트리엔날레 실행위원회는 이날 전시 중단을 결정하고 전시장을 폐쇄했다. 나고야=연합뉴스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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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 일본에서 열린 국제예술제 ‘아이치 트리엔날레’ 도중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소녀상 전시가 중단된 데 대해 이 문제를 다뤄 온 일본 측 검증위원회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부당한 제한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우익 세력의 협박이 이어진 당시 상황을 감안한 것이라지만, 결정의 적절성을 둘러싸고 거센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시 재개를 권고하면서도 전시 방식을 바꾸라는 조건을 내걸어 ‘사실상의 작품 검열 시도’라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25일 아사히(朝日)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이치(愛知)현이 구성한 검증위는 소녀상 전시 중단 결정에 대해 “위기 관리상 정당한 이유에 토대를 둔 것으로,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는 뜻을 밝혔다. 나고야(名古屋)TV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부당한 제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검증위가 판단한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일환으로 지난달 1일 개최된 ‘표현의 부자유전(不自由展)ㆍ그 후’ 기획전은 소녀상을 일본에 선보인 지 사흘째 돌연 전시를 중단했다. 이후 한일 양국에서는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비판이 들끓었다.
검증위는 이날 아이치현청에서 열린 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중간 보고서를 정리했다. 일단 검증위는 소녀상이나 쇼와(昭和ㆍ1926∼1989) 일왕의 초상이 불타는 모습이 담긴 영상 작품 등 우익 세력한테서 집중 항의를 받았던 전시물에 대해 “작가의 제작 의도 등에 비춰볼 때, 전시 행위 자체에는 문제가 없는 작품”이라고 전제했다. 그러나 제작 배경과 내용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고 지적한 뒤, “정치성을 인정한 가운데, 치우치지 않는 설명이 필요했다”면서 해당 전시회를 ‘큐레이션(기획 방식)의 실패’라고 규정했다. “혼란 발생을 예측했으면서도 전시를 강행한 예술감독의 행위에 문제가 있었다”는 게 검증위의 판단이다.
검증위는 사흘간 이어진 전시에서 행사장 내부가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였지만, 전시물을 직접 보지 않은 사람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오른 단편적 이미지만을 보고 조직적으로 전화를 걸어 주최 측 등을 공격했다고 밝혔다. 검증위는 이어 “조건이 갖춰지는 대로 속히 재개해야 한다”고 권고하면서 그 조건으로 △전화 또는 팩스 등에 의한 협박이나 공격 위험 회피 △전시 방법이나 해설의 개선 △사진촬영 또는 SNS에 의한 확산 방지 등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외국 작가들이 전시회 중단 결정을 ‘테러 대책이나 안전 관리를 표면적 이유로 내건 사실상의 검열’이라고 비판한 데 대해 “의사소통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에둘러 반박했다.
이번 검증위 결정은 ‘신속한 재개’를 권고했다 해도, 결국엔 전시 중단 결정을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고 사실상 옹호했다는 점에서 전시회를 추진했던 이들의 격한 반발을 부를 전망이다. 게다가 전시 재개의 조건 중에서 ‘작품에 대한 사진 촬영, SNS를 통한 확산 방지’의 경우, 표현의 자유를 짓누르는 현실을 고발하는 전시회의 기본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측면도 있다. ‘평화의 소녀상’을 출품한 김운성ㆍ김서경 작가는 이날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검증위의 권고 전문을 봐야 하겠지만, 보도된 것만 봐서는 전시 재개에 전제조건을 걸어서 또다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라며 “대책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김운성 작가는 “소녀상 철거는 일본 스스로 ‘표현의 부자유’를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난한 바 있다.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참가했던 다른 작가들도 지난달 “전시회에 대한 정치적 개입”이라는 내용의 항의 성명을 발표했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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