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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와다 하루키 “수출 규제 정책 뒤에는 일본의 절망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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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양심’ 도쿄대 명예교수

10년 공들인 역작 『러일전쟁』 펴내

중앙일보

와다 하루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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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원료에 대한 수출규제 정책을 펼치는 것은 반(反)시대적인 발상입니다.”

일본의 역사학자이자 ‘행동하는 일본의 양심’이라고 불리는 와다 하루키(和田春樹·81) 도쿄대 명예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하루키 교수는 “현재 일본의 정치 지도자는 100년 전과는 다른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수출규제 정책의 배후에는 일본이 한국 대통령을 상대하지 않겠다는 자세가 깔려있다”며 “지금 일본에 한국과 중국은 두려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런 정책은 일본의 절망감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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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


신간 『러일전쟁: 기원과 개전』(한길사·전 2권·사진)을 펴낸 그는 24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책의 큰 주제인 러일전쟁에 대한 얘기와 더불어 현재 경색된 한·일 외교관계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혔다. 이를테면 일본이 내년 도쿄올림픽에서 욱일기 반입을 허용한 것에 대해 “욱일기 사용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하지만 그보다 더 문제는 일본이 사용하는 일장기다. 일본 국민은 천황 제도를 유지하면서 일장기를 사용하고 있다. 천황도, 일본 국민도 역사적 반성을 토대로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러일전쟁에 대해서는 “본질은 일본이 조선을 차지하기 위한 목적의 ‘조선전쟁’이었다”고 재차 강조했다. “러일전쟁의 가장 큰 결과는 일본이 대한제국을 말살하고 조선 전역을 식민지 지배한 것”이며 “러일전쟁은 조선을 지배하기 위한 열강의 싸움이었다”고 설명했다.

1904~1905년 만주와 조선의 지배권을 두고 러시아와 일본이 벌인 러일전쟁은 20세기 세계사의 대사건이었다. 전쟁 직후 대한제국은 을사늑약(을사조약·1905) 체결을 강요받았다. 러일전쟁 승리에 취한 일본에서는 제국주의가 발호했고, 패배한 러시아에서는 로마노프 왕조가 몰락하고 볼셰비키가 득세하는 직접적 계기가 됐다.

그는 청일전쟁(1894~1895년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다툰 전쟁)과 러일전쟁의 연관성도 언급했다. “10년 간격을 두고 벌어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은 따로 떼어놓고 볼 수 없다”면서 “이번 책에 이제까지 밝혀진 것과 달리 러시아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제시했다. 두 전쟁은 일본이 조선을 차지하기 위해 용의주도하게 계획한 단일 범죄였다”고 말했다. 그는 청일전쟁을 ‘제1차 조선전쟁’, 러일전쟁을 ‘제2차 조선전쟁’으로 명명했다.

하루키 교수는 조선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제1대 황제인 고종에 대한 평가도 덧붙였다. 제국주의에 일관되게 저항했다는 것이다. 그는 “고종의 저항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평가가 있을 수 있지만 일관된 저항의 사실은 역사의 중요한 요소이며 그것을 정확히 모르면 동북아시아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국 독자들이 이책을 통해 어떤 의미를 찾길 바라느냐는 질문에는 “일본 제국주의의 교묘한 행보에 대해, 그리고 일본의 침략 때문에 망국의 위기에 떨어졌던 자국의 행보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1300쪽에 달하는 이 책은 각주만 2402개가 달려 있다. 10년에 걸쳐 완성한 역작이다. 또 러시아·일본·조선·중국·영국·미국 등 9개국의 700여 명에 이르는 인물이 등장해 사실관계를 고증한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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