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1991년 경기 화성 등 지역에서 발생한 이른바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당시 유력한 용의자 수배 전단.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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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된 이춘재(56)는 1994년 1월 자신의 처제를 성폭행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5년째 수감 중이다.
당초 1심과 2심은 이 씨에게 사형을 선고했으나 대법원은 우발적 범행이라는 취지로 원심을 파기했다. 토스트기를 준다고 처제를 자신의 집으로 유인하고 수면제를 먹인 뒤 성폭행을 기도한 이춘재의 범행은 우발적이고 치밀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이춘재는 자신의 범행에 대해 일관적으로 우발적임을 강조했다. 그는 94년 1월 이 사건으로 최초 경찰 조사에서 "지난해 12월 가정불화로 아내가 가출해 혼자 지내는데 처제가 갑자기 찾아와 마구 비난하자 홧김에 이같은 짓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바 있다.
대법이 우발적 범행이라고 판단한 근거는 역설적이게도 이춘재가 처제를 성폭행하려고 계획한 범행 도구인 수면제에 있었다.
이 사건 판결문 등에 따르면 이씨는 94년 1월 13일 오후 "토스트기를 가져가라"며 처제를 자신의 집으로 오게 한 뒤 수면제를 탄 음료수를 먹이고 성폭행했다.
이후 자신의 범행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둔기 등으로 처제를 폭행하고 실신하자 목 졸라 살해했다. 이어 자신의 집에서 880m 떨어진 철물점 야적장에 시신을 유기했다.
경찰에 따르면 발견 당시 시신은 화성연쇄살인사건 피해자들과 비슷하게 스타킹으로 꽁꽁 묶였다. 머리에는 비닐봉지를 씌우고 청바지로 덮여있었다. 이 시신은 대형 쿠션 안에 들어있었다.
이에 대해 1,2심은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범행이 이뤄졌고, 뉘우침이 없어 도덕적으로 용서할 수 없다"며 이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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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법원은 '이씨의 성폭행은 계획적인 것이 맞지만, 살인은 우발적일 수도 있다'는 이유로 파기환송했다. 이후 대전고법은 대법 취지대로 사형은 너무 무겁다고 판단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대법 판결문에 따르면 피해자는 수면제로 인해 정신을 차릴 수 없는 항거불능의 상태가 아니었다. 당시 피해자는 수면제가 섞인 음료수를 먹고 약효가 나타나기도 전에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이춘재는 성폭행을 했고 둔기로 머리를 때리는 등 상해를 입혀 살해했다.
대법은 이와 관련해 당초 수면제를 먹였다는 점만으로 이 사건 살인 범행까지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이루어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수면제가 치사량 이상이라면 살인에 대한 계획도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은 판결문에서 "만일 피해자에게서 검출된 수면제의 양이 치사량 이상임이 분명하다면 이 사건 살인 범행마저도 사전에 계획된 것이라고 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라고 판단했다.
결국 범행 상황을 종합하면 피해자가 수면제 약효가 나타나기도 전에 밖으로 나가려 했던 상황이, 이춘재에게는 치사량 이상의 수면제를 먹인 것도 아니고 계획적인 범행이 아닌 것을 입증하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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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살인 범행에서는 이춘재가 피해자를 살해할 것까지 사전에 계획하고 있었다고 볼 만한 직접적인 자료는 찾아볼 수 없다고도 판단, 당초 수면제를 먹였다는 점만으로 살인 범행까지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이루어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런 이유로 이춘재가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범행을 저질렀다고 판단해 피고인에 대해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 고법으로 사건을 돌려보냈고 이춘재는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현재 부산교도소에서 복역 중에 있다.
한편 이춘재는 1995년부터 부산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그는 수감생활 동안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 징벌이나 조사를 받은 적이 한 차례도 없던 모범수로 드러났다. 4개 등급으로 이뤄진 수감자 등급에서도 1급 모범수로 분류됐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모범수 생활을 하며 가석방을 노리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공소시효가 만료된 화성연쇄살인 3건의 사건과 관련이 있는 유력한 용의자 이춘재가 사건 현장인 화성을 다시 찾을 수도 있는 셈이다.
현재 이춘재는 화성 연쇄 살인사건 관련해 전부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0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팀은 19일 형사, 프로파일러 등 7명을 이씨가 수감돼 있는 부산교도소로 보내 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이씨는 자신과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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