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하늘에서 탈무드를 읽으신다고 칩시다. 그 책은 숫양과 염소의 가죽으로 만들었을까요, 아니면 저급한 재료로 만든 책일까요.”
1141년 유럽의 한 수도원장은 종이를 양피지에 비교하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스페인 발렌시아 근처에 들어선 제지 공장에서 종이를 생산한 이들은 이슬람교도들이었다.
수도원장의 양피지 찬양은 종교적 적대감과 종이를 괄시한 기독교인들의 편견이 작용한 결과였다. 물론 낡아서 해진 속옷 뭉치를 찧고 물에 불려 얻은 종이는 우아한 양피지에 비하면 불결하고 천했다.
하지만 종국의 승리자는 종이였다. 72단계나 거쳐야 겨우 한 장 나오는 종이 생산 과정이 기계화하면서 효율을 높인 것이다.
이 책은 ‘책의 몸’에 관한 역사다. 책을 구성하는 오장육부의 특성과 역사를 탐구한다. 책이 사물로서 갖는 물성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노력에 관한 이야기인 셈이다. 종이와 잉크, 판지와 풀로 공들여 만든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장치의 모든 것을 다룬다.
개별 글자를 재배열할 수 있는 가동 활자를 발명한 구텐베르크 이후 책 제작 과정은 완전히 바뀌었다. 1886년 오트마르 머건탈러가 활자를 조판하고 해판하는 식자공의 일을 대신할 식자기(라이노타이프)를 개발하자 토머스 에디슨은 “세계에서 8번째로 경이로운 업적”이라고 평가했다.
효율적인 인쇄 기계를 만들기 위해 실패를 거듭하는 발명가 제임스 페이지에게 식자기 개발 투자비용으로 17만 달러를 쏟아붓고 거덜 난 이는 마크 트웨인이었다.
책은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 두루마리부터 접착식 제본으로 특허를 신청하며 1000년이 넘는 책 제작 전통을 바꾼 페이퍼백에 이르기까지 진화 과정을 모두 다룬다.
책을 읽고 나면 책의 촉감, 책 냄새, 책장 넘기는 소리를 새로 느끼게 될지 모르겠다. 2000년 전부터 계속 이어진 수많은 ‘출판인’들의 노고와 역경을 돌이켜보듯, 이 책은 판지를 천이나 가죽으로 감싸지 않고 판지 그대로 노출했다. 책의 ‘알몸’을 맛보는 재미가 남다르다.
◇책의 책=키스 휴스턴 지음. 이은진 옮김. 김영사 펴냄. 596쪽/2만4800원.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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